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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고랑»에는 물질주의를 주제로 하는 6 항이 있음.

오늘날에는 남자도 여자도 착한 사람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착한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충분히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혁명가’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둘러싼 쾌락주의와 유물론, 이교적인 분위기에 대해 타협을 거부하는 사랑의 반역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세속적인 사람들은 영혼들이 최대한 빨리 하느님을 잃고 이어서 이 세상을 잃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세계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짓밟고 이 세상을 착취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 이중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루 종일 불쾌한 마음으로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걱정거리입니다.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유일한 도피처인 잠마저 오래가지 않을거라며 잠들기 전부터 걱정합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고 다시 하루가 시작되는데 짜증이 나고 실망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남겨진 것은 영원한 행복으로 가기 전의 첫걸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임을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기쁨을 누리며 걸음을 계속하는 자만이 그 행복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슬픔에 잠긴 삶의 방식과 기쁨에 찬 삶의 방법의 차이, 소심과 담대함의 차이, 신중하고 교활하고 ‘위선적인 태도’와 겉과 속이 다르지 않는 태도의 차이, 다시 말하면 속된 사람과 하느님 자녀들의 차이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줍시다.

그대가 피해야 할 근본적인 실수를 하나 알려주겠습니다. 즉, 당신이 사는 시대나 환경의-존귀하고 정당한-습관과 요청을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성스러운 도덕에 맞추도록 인도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가 ‘존귀하고 정당한’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다른 것과 분명히 구별한 점에 주목해 주었으면 한합니다. 고귀하지도 정당하지도 않은 일에는 시민권이 없는, 즉 시민이 받아들일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물질주의적이고, 환락추구적이고, 신심없는 속세의 압력과 영향 아래서, 우리가 어떻게 그들이 생각하는 것같이 하지 않고, 그들이 하는 것같이 행동하지 않는 자유를 요구하고 정당화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자녀는 그 자유를 요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그것을 단번에 영원히 획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녀는 그가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그것을 방어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직 그렇게 해야만 그들은 우리의 자유가 우리의 주위환경에 얽매어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