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 목록

«밭고랑»에는 성격를 주제로 하는 12 항이 있음.

주님께서는 진부함과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확고한 발걸음으로 모든 종류의 환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강하고 씩씩한 영혼들을 필요로 하십니다.

조용하고 균형잡힌 성격 불굴의 의지, 깊은 신앙과 열성적인 경건성: 이것들은 하느님의 자녀들의 불가결한 특성입니다.

주님께서는 진짜 돌에서조차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꺼내낼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돌이 무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비록 굳은 바위가 형태가 없다 해도, 그 단단한 돌에서 좋은 건축용 돌을 잘라내기 쉽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평범한 톱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를 그의 행동에서 철저하게 인간적이고, 동시에 영원한 일들의 신선함을 반영하도록 부르십니다. 그래서 사도는 길고, 참을성 있고, 영웅적인 신앙형성의 과정을 거친 영혼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대는 말하기를 매일 당신 자신 안에서 새로운 일들을 발견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대답합니다: 그대는 지금 당신 자신을 알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대가 진실로 사랑할 때에는, 그대는 더욱더 사랑하는 방법들을 발견합니다.

만약에 누구인가가 가톨릭 신자들이 사회에서 행동하는 방법을 보면서, 그들은 순하고 쉽게 이용당한다고 결론짓는다면 그것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지난날에도, 그리고 실로 지금도, perfectus Homo —완벽한 사람이십니다.

만약에 주님께서 그대에게 어떤 타고난 자질이나 기량을 주셨다면, 그대는 단순히 혼자서 그것을 즐기거나 그것을 과시해서는 안되고; 그대는 그것을 그대의 이웃에 봉사하는 데 자비롭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대는 당신 자신과 똑같은 이상을 함께하는 무척이나 많은 영혼들과 함께 살고 있으니, 그대가 봉사하기 위해 지금보다 어떤 더 좋은 경우를 발견할 것입니까?

물질주의적이고, 환락추구적이고, 신심없는 속세의 압력과 영향 아래서, 우리가 어떻게 그들이 생각하는 것같이 하지 않고, 그들이 하는 것같이 행동하지 않는 자유를 요구하고 정당화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자녀는 그 자유를 요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그것을 단번에 영원히 획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녀는 그가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그것을 방어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직 그렇게 해야만 그들은 우리의 자유가 우리의 주위환경에 얽매어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대의 친척들과 동료들과 친구들은 변화를 알아차렸고, 그것이 임시적인 일면이 아니고 그대가 더이상 당신 같지가 않음을 인식하였습니다.

근심하지 말고 계속하십시오. “내 안에 살아계시는 분은 이제 그리스도이시다” 이것이 곧 지금 일어나고 있는 바의 사실입니다.

노(No)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뿐만 아니라 왜 아니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물어보십시오. 배워야 할 점, 혹은 바로잡아야 할 점을 알기 위해서 말입니다.

한때는 그대가 비관적이고, 주저하고, 무감동했습니다. 지금 그대는 완벽하게 변모했습니다: 그대는 용기있고, 낙관적이고, 자신있음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대는 마침내 하느님께만 의지하기로 결심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가 훌륭한 인간적인 덕목들을 지니고 있으나 초자연적인 견해가 전연 결여되어 있을 때면 대단히 딱한 상황에 놓여집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덕목들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묵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