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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영혼은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개인적·사회적 불의(不義)에 당연히 맞서 싸우도록 그리스도인을 북돋웁니다. 그런 불의에 대항할 때 그리스도인이 느끼는 조급함과 걱정, 그리고 불편함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여러 세기 동안 인류는 서로 어울려 살아왔지만, 여전히 엄청난 증오와 파괴, 광신주의를 자신들의 눈 속에, 그리고 마음 깊이 쌓아두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보고 싶어하지 않고, 좋아하고 싶어하지도 않으면서 말이죠.

이 땅의 재화(財貨)는 소수의 인간들에게 독점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문화 역시 인간이 만든 파벌들에 의해 제한받습니다. 하지만 그 밖의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으며, 교육을 받지도 못합니다. 모든 인간의 삶은 거룩합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인간의 삶이 그저 통계를 장식하는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이를 고치고자 하는 조급함을 저는 이해하고 동감합니다. 그런 조급함이 저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분은 당신이 주신 새로운 사랑의 계명을 우리가 실천하도록 끊임없이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의 삶이 처한 모든 상황들은 하느님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그 메시지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응대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도록 요구합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 25, 31-40)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형제의 모습으로, 우리 주위 사람들의 모습으로 우리를 만나려 하실 때 그분을 알아봐야 합니다. 어떤 인간의 삶도 결코 홀로 고립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다른 사람들의 삶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어느 남자도 어느 여자도 결코 단 한 줄의 따로 떨어진 시구(詩句)가 아닙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우리 모두는 하느님과 함께 한 편의 거룩한 시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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