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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어디에 있든, 한창 잘 나가는 순간을 살고 있든, 아니면 위기와 좌절의 순간에 있든 간에,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베드로 성인이 성령 강림 이후에 말했던 장엄하고도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주춧돌이자 구원자이시며 우리 삶의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사도 4,12)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들 가운데 아주 특별하게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고 저는 곧잘 얘기해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혜의 선물입니다. 지혜의 선물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을 알게 하고 그분의 현존하심에 기뻐하게 해줍니다. 그로 인해 지혜의 선물은 우리에게 하나의 관점(觀點)을 부여합니다. 우리는 그 관점을 통해 우리가 처한 상황과 우리 삶의 여러 사건들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네 신앙은 변함없이 굳세게 일관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며 세상과 그 역사를 묵상할 때 우리 주님의 마음을 가득 채웠던 느낌과 똑같은 감정을 우리 가슴 속에 반드시 갖게 되어야 합니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마태 9,36)

그리스도인은 인간성 안에 숨 쉬는 모든 선한 것들을 무시해선 안 됩니다. 그 건강한 기쁨을 인정하거나 인간적인 열정과 이상에 함께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가 세상에서 발견하는 모든 선한 것들과 조화를 이루며 행동할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한 배려심으로 세상 한가운데서 살아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인간 정신의 깊이와 풍부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인간의 정신을 약화시키거나 인간 영혼의 고귀한 충동을 제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진실되고 진정한 의미를 자각하고 실현함으로써 그러한 특성들을 더욱 성장시킵니다. 우리는 대중적인 행복만을 추구하기 위해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당신이 사셨던 삶의 친밀함에 깊이 스며들도록 부르심 받았습니다. 또한 같은 하느님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알고 사랑하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아울러 세 위격을 가지신, 한 분이신 하느님의 같은 사랑 안에서 천사들과 모든 인류를 사랑하도록 불림 받았습니다.

인간 본성의 가치와 존엄함을 선포하는 것은 그리스도 신앙의 대담한 모습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느님 자녀의 존엄함을 성취하기 위해 창조됐다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엄청나게 대담한 특징입니다. 그러한 확신은 우리를 초자연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주는 은총을 통해 가능합니다. 만약 그리스도교 신앙이 구원의 약속 위에 세워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정말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담한 일이었겠지요. 그런데 하느님 아버지께서 주신 이 구원의 약속은 그리스도의 피로 확증됐으며 성령의 지속적인 활동에 의해 다시금 확인되고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고, 신앙 안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동방 교회의 위대한 박사들 중 한 명이 다음과 같이 설명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신앙 안에서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투명한 물질이 한 줄기 빛을 받아 광채를 발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성령에 의해 태어나 밝게 빛나게 된 영혼은 스스로 영적(靈的)이 되며, 은총의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리웁니다. 성령으로부터 미래에 일어날 여러 사건들에 대한 지혜가 오며, 신비를 이해하게 되고, 은총 주심과 천국의 시민됨, 그리고 천사와의 대화 등과 같은 숨겨진 진실들을 깨우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부터 영원한 기쁨이 찾아오며, 성령으로 인해 하느님 안에서 인내하고 하느님을 좋아하게 되며, 우리의 상상이 미치는 가장 고귀한 상태에 이르러 하느님과 같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 존엄성의 위대함을 깨우치는 것은 겸손한 마음과 더불어 우리 안에 하나의 태도로 자리잡습니다. 그 존엄성이 주님의 은총을 받아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 자녀가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진정으로 엄청난 사실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에게 생명을 준 것은 우리들 자신의 힘이 아니며 바로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이는 참으로 잊어선 안 되는 진실입니다. 만약 그 진리를 잊어버린다면, 우리 삶을 거룩하게 하는 일은 왜곡되어 주제넘는 오만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적 삶이 곧 무너져내릴 것이고, 그때 영혼은 스스로의 나약함과 비천함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묻습니다. “내가 거룩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요? 만약 내가 말하는 ‘거룩함’이 ‘나는 거룩함을 지니고 다니지만, 나를 거룩하게 만들어 줄 어느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면, 저는 거짓말쟁이에다가 자만심으로 가득 찬 인간일 것입니다. 하지만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레위기 말씀처럼 ‘거룩함’이란 말을 ‘거룩하게 된 누군가’로 이해한다면, 저는 감히 제가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온 몸이 땅 끝에 사는 마지막 사람까지 드리워져 그 몸의 머리와 그 분 아래서 저도 함께 거룩해지기 때문입니다.”

복되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제3위격이신 성령을 사랑합시다. 여러분은 성령으로부터 격려나 비판의 거룩한 울림을 받습니다. 여러분 존재의 친밀함 속에서 그 거룩한 울림에 귀를 기울입시다. 여러분의 영혼에 쏟아진 그 빛을 받으며 이 세상을 걸어갑시다. 그러면 희망의 하느님께서 우리를 완벽한 평화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느님께서 주신 희망이 성령의 권능으로 우리 안에서 매일매일 더욱더 크게 자라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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