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

내적 생활과 사도직으로 진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감정적 믿음이 아니라 하느님의 요구에 부응하겠다는 의지의 너그럽고 결연한 마음가짐입니다.

주님이 오지 않으면 확실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없습니다.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확신이 있다면 비록 험한 길, 가파른 언덕길일지라도 두터운 신뢰와 인내를 견디는 마음으로 기쁨과 평화로 가득 차 더욱 하느님과 일치할 것입니다.

인간적인 일하는 방법과 초자연적인 일하는 방법과의 사이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적인 일하는 방식을 보면 시작은 좋지만 나중에 저조해집니다. 초자연적인 일하는 방식은 마찬가지로 시작은 좋은…그리고 나중에는 더 나은 일을 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인간적으로 고상한 이유로 행동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이유가 ‘지배’했을 때의 행동은 얼마나 훌륭한 것입니까.

고된 일을 앞에 두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 친구가 물었습니다."여러분은 좋아서 열심히 일하시는 거냐고 했더니, 기쁨에 차서 침착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좋아해서 열심히 한다고요? 그런 동기로 일을 하다니, 너무 아깝습니다. 저희는 끊임없이 기다리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일을 하는 겁니다.”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은 비몽사몽간에 깨어나 겁쟁이에게 힘을 주고 길을 잃은 사람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전열에 편입하게 하여 그토록 많은 힘이 낭비되는 것을 피하게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하느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사람이 여러가지 요구를 앞에 두고 반복하던 말, 그 초자연적인 궁리 -자발적인 사랑에서 나오는 세심함은- 네, 아마 당신에게도 도움이 될겁니다. “이제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진지한 결의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변덕,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고 있으면서, 도대체 어떠한 그리스도교적 완전성에 이른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그대의 결점을 극복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당연한 일이지만 항상 나쁜 행동이라는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대의 의지는 견인불발(堅忍不拔)의 투쟁에서 단련되지 않았으니, 어려운 일이 닥쳤을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외모는 힘이 넘치고 씩씩합니다. 그러나 내부는 어떤 연약, 어떤 의지의 부족함이 있습니다.

당신의 도덕을 겉치레가 아니라 자신의 성격을 명확히 하는 습성으로 바꾸기로 결심하십시오.

“도움을 청할 힘조차 없는 일부 남녀를 저는 압니다”라고 그대는 저에게 슬픔과 실망으로 말해 줍니다. 그들을 궁지에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그대가 당신 자신과 그들을 구하려는 소망은 그들의 회심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거기다 또 만약에 그대가 그 일에 관해서 조심스럽게 생각한다면 그대는 누군가가 그대에게 도움을 주리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연약한 사람, 어리석고 하찮은 일에 대해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은 작은 것을 타인을 위해는 물론 예수를 위해 희생하여 바칠 수 없는 사람입니다.

타인에 대해서는 그토록 엄하게 요구하는 당신이 매일매일의 의무를 수행하면서 똑같이 나약한 태도를 취한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까.

그대는 적당한 높이에 이르지 못한 자신을 보고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일을, 더 효과적으로 해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주 멍한 채로, 노력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희망이 없을 때도, 또한 희망을 버리지 말고'. 희망이 없더라도 확실한 희망에 살아가십시오.

이 견고한 바위를 지탱하면 당신을 구하고 당신을 지지해 줄 것입니다. 희망은 위대한 신학적인 덕행입니다. 당신이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격려하고 멈춰서는 일이 없도록 도와줍니다.

그런 얼굴로 날 보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희망의 덕을 키운다는 것은 의지를 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평소 하던 일을 앞두고 마음이 흔들릴 것 같으면 다시 한번 다음의 생각을 환기시켜야 합니다. “일, 즉 공부는 나의 길의 불가결한 부분이다. 만약에 내가 내 게으름의 결과로 직업적으로 불신을 초래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일을 쓸모없거나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그들을 돕고 하기 위해서는, 저는 직업적인 명성의 영향이 필요하고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이기도 하다.”

그대가 그대의 일드을 포기한다면, 그대는 하느님의 계획들에서 떠나가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하느님 의 계획에서 벗어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결단코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하느님의 자녀의 길을 따라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이름으로 그대는 일들을 처리하고, 당신 자신을 부정하고, 그대의 상아탑에서 내려오라고 강력하게 권고를 받았기 때 문입니다. 그대는 당신 자신이 참여하지 않는 것을 변명하였고, 그대가 지금 그대를 짓누르는 그 무게를 느껴야함을 저는 전연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일련의 콤플렉스와 괘념들, 억압과 주저, 이것들은 그대를 쓸모없게 만듭니다.

제가 그대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기분나빠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담대하게 악을 퍼뜨리는 사람들보다, 마치 그대가 그들보다 더 나쁘거나 더 낮기나 한듯이 덜 용감하게 행동하였습니다.

“일어서서 걸어가십시오”. 결심을 하십시오. 만약에 그대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고분께서 요구하고 계시는 바를 듣는다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만약에 그대가 그것을 충분히 그리고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한다면, 그대는 아직도 그 사악한 무거운 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대는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길이 두려워졌어습니다. 의무를 다하면서 스스로를 부정하고 상아탑에서 내려오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요구받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변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대를 짓누르는 그 무거운 짐, 즉 당신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일련의 복잡함이나 항변, 거드름이나 소심함 등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하게 말해도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사악한 마음의 사람들과 대담하게 악을 퍼뜨리는 사람들보다 더 사악한, 더 하등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일어서서 걸어가십시오”. 하느님의 은혜를 입고 하느님이 요구하시는 바를 귀담아 들으시고, 그리고 전심전력으로 주님께 협력한다면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라도 그 꺼림칙한 짐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답답해서 마음이 근질근질한 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의 결심대로, 필요한 만큼의 세월을 가지고 진지하게 준비하기를 하느님은 원하시고, 그것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나에겐 시간이라는 아군이 있다"고 한 그 황제는 틀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떤 마음이 곧은 사람이 질투와 시샘에 사로잡힌 사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렇게 맑은 물을 흐리다니 얼마나 사악한 마음입니까.”

그대는 조용하고 소극적으로 남아 있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정의로운 법에 대항한 불의한 침범의 면전에서는,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매일 당신 더 명랑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고 있음을 아는 것이 준 훌륭한 자기 확신과 신뢰덕분입니다.

성서는 이미 이를 선포하였습니다. “성실한 사람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만하다.”

지금처럼 완전한 자유를 느껴본 적은 없을 겁니다. 지금 당신의 자유는 사랑과 이탈, 확실함과 불확실함으로 이루어진 직물입니다. 당신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 신뢰도 하지 않고, 하느님에 대해서는 전폭적인 신뢰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뭄 때를 대비해서 댐에 물이 어떻게 저장되는가를 본 적이 있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어려움이 닥쳤을 때, 기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서 보내 주시는 기쁨과 명료한 통찰력과 빛을 비축해 놓아야 합니다.

처음 열정의 불꽃이 꺼지면 어둠 속에서 전진하기가 힘듭니다. 힘들지만 그런 전진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걸음입니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어둠이 걷히고 열의와 열정이 돌아옵니다. 참고 인내하십시오

하느님은 자녀인 우리가 공격대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전투준비를 갖춘 군대처럼 어디서나 싸우는 것이 우리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대의 의무사항들을 서둘러서 이행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의무사항들을 하느님의 보조에 맞춰서 중단없이 완결해 나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대는 지적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계속할 수 있지만 무기력하기도 합니다. “아무도 나를 찾아 오지 않았다”라는 것이 그대의 변명입니다.

내 생각을 말하겠습니다: 만약에 그대가 태도를 바꿔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지 않는다면 그대는 결코 능률있는 사도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그대가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당신 자신을 잊어 버리고 그대의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만을 생각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대에게 가르쳐 주신 것같이 그대의 의지를 하늘나라의 의지에다 효성스럽게 내놓으십시오. 얌전하게 성령의 빛을 따라 가십시오.

마리아께서는 잃어버린 아드님을 찾으시느라고 사흘 밤 사흘 낮을 소비하셨습니다. 당신과 나 역시 예수님을 찾으려는 우리들의 자발적인 마음이 멈추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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