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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친구들»에는 회개를 주제로 하는 2 항이 있음.

여러분은 가정에서 귀중한 장식품을 어떻게 다루십니까? 예컨대, 꽃병이 깨지지 않도록 얼마나 애지중지합니까? 그러다가 어느 날 아기가 꽃병 근처에서 놀다가 건드려 깨뜨리면 어떻게 합니까? 온 가족이 당황하겠지만, 곧바로 조각을 모으기 시작할 것입니다. 조각을 맞추고 접착제를 발라 마침내 이전의 아름다움을 회복할 것입니다. 깨진 것이 한 조각이라면, 고정용 금속 핀 등으로 간단히 붙일 수 있고, 그렇게 수선한 그릇은 본래의 매력을 유지합니다.

이러한 경우를 우리 자신의 내적 생활에 적용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자신의 나약함과 죄악과 실수들을 직시하게 되었을 때,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느님 아버지께 우리 자신을 맡기며 이렇게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 제가 깨진 질그릇처럼 비참한 모습으로 여기 왔습니다. 주님, 저의 부서진 조각들을 다시 붙여 주시고, 슬퍼하는 제가 당신의 용서로써 더욱 힘을 얻고 이전보다 더욱 멋진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 기도입니까! 우리의 나약한 질그릇이 깨질 때마다 이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부서지기 쉬운 우리 자신의 모습에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선한 행동을 하다가도 지극히 사소한 이유로 너무나 쉽게 포기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지 마십시오. 언제나 곁에서 도와주시는 주님께 맡기십시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시편 27,1) 우리는 아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다가가기만 한다면,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탕자가 방종한 생활로 재산을 탕진하고, 더욱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 잊고 지내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루카 15,22-23). 우리가 회개하고 하느님께 다가갈 때,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끔찍한 처지에서 보물을 이끌어 내시고, 우리의 나약함에서 힘을 이끌어 내십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하느님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날마다 그분께 간다면, 그분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고 행동으로 사랑을 확인시켜 드린다면, 모든 것을 그분의 전능하신 힘과 자비에 의탁한다면, 그러한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무엇을 준비하시겠습니까? 아버지를 배반하고 집을 나간 아들이 돌아왔다고 잔치를 열어 주신다면, 언제나 그분 곁에 있으려고 노력한 우리를 위해서는 무엇을 마련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를 괴롭힌 자들이나 우리가 겪은 수모들을, 그들이 아무리 불공정하고 야만적이며 무례하였을지라도, 기억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불만 사항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쭉 읽어 내려가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에게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본보기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게다가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은 옷처럼 입고 벗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약해지거나 더 강해질 수 있고, 또는 길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 초자연적 삶과 더불어 우리 신앙은 튼튼해지며, 하느님 없이 비참하게 헐벗은 자에 대한 생각은 영혼을 두렵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용서하고 감사합니다. 저의 하느님, 제가 저 자신의 가엾은 삶을 바라볼 때, 어떤 허영을 부리거나 더욱이 어떤 자랑을 할 만한 근거가 전혀 없음을 알게 됩니다. 저에게 보이는 것이라고는 제가 언제나 겸손해야 하고 뉘우쳐야 하는 수많은 이유들뿐입니다. 섬기는 삶이 인간으로서 가장 고상한 소명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