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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하느님의 친구들»에 수덕 투쟁 → 십자가와 참회 항이 있음.

이렇게 쉽지 않은 현실을 여러분에게 상기시켜 주는 이유는, 여러분 행동의 동기를 주의 깊게 성찰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고쳐야 할 것은 고치고, 모든 것이 하느님과 여러분의 동료들에게 봉사하도록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곁을 지나가셨음을, 지나가시면서 우리에게 사랑의 눈길을 주셨음을 잊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은총은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2티모 1,9).

그러므로 여러분의 지향을 정화하십시오.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모든 일을 하고, 날마다 기쁜 마음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십시오. 이러한 생각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저는 수천 번 되풀이하여 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단순히 어려움과 고통을 (그것이 신체적인 것이건 윤리적인 것이건) 견디는 단계를 넘어 그것들을 사랑하고, 우리를 비롯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하느님께 봉헌한다면, 그것들이 우리를 괴롭히지는 않으리라고 장담합니다.

이제 우리가 짊어진 십자가는 더 이상 아무런 이름도 없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 구원자께서 몸소 그 십자가를 짊어지셨음을 알기에 위안을 받습니다.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우리도 예수님께 협력하여야 합니다.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던 시몬은 마땅히 휴식을 누릴 자격이 있었지만, 예수님을 도와 자신의 어깨를 빌려드려야 했습니다(마르 15,21 참조). 사랑에 빠진 영혼에게는 그리스도를 위한 키레네 시몬이 되어, 그분의 고통받는 인성에 동참하고, 누더기 상태로 전락하는 것이 결코 불행이 아닙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느님과 가까이 있음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어 이 일을 하도록 선택하셨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덕분에 오푸스데이 안의 제 자녀들이 놀라운 기쁨을 누렸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기쁨이 확산되었습니다. 이 일에 관하여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이야기하였고, 저는 이 명백한 진실에 대하여 언제나 똑같은 대답을 합니다. 다른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행복은 그들이 결코 삶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그들은 불행에 직면하여 좌절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결점과 나약함에도 희생정신으로 살려고 날마다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길이 다른 사람들에게 더 쉽고 더 즐거운 것이 되도록 자신을 끊임없이 기꺼이 내어놓습니다.

이제 진지하게 결심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제대로 살아보겠다고 굳은 결심을 할 수 있도록, 또한 여러분의 모든 극기 고행이 순수한 지향 안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주님께 도움을 청하십시오. 여러분이 감실 옆의 깜빡거리는 램프처럼 은은하고 조용하게 주님께 봉사할 수 있도록 간청하십시오. 여러분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거룩한 손님께 확고한 답변을 드릴 수가 없다면, 저의 말을 잘 경청해 보십시오.

참회는, 비록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저항하고 헛된 망상 때문에 빠져나가려 하더라도, 여러분 스스로 정한 시간표대로 정확하게 이행하여야 합니다. 제 시간에 시작하고, 분명한 이유가 없이는 어렵고 힘든 일이더라도 나중으로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참회란 하느님과 이웃, 그리고 여러분 자신에 대한 의무를 받아들여, 해야 할 일 하나하나에 필요한 시간을 스스로 찾아내는 것입니다. 참회자는 지쳐서 기운이 없거나 마음이 냉랭해지더라도 기꺼이 기도 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참회란 여러분 자신의 가족부터 시작해서 여러분 주변 사람들에게 언제나 사랑을 넉넉하게 베푸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통받는 사람, 병약한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야 합니다. 비록 짜증나고 성가시게 하는 사람들에게도 인내롭게 응대해야 합니다. 또한 필요한 상황이 된다면, 특히 정의롭고 공정한 이유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필요하다면, 우리의 계획과 일을 중단하거나 변경해야 합니다.

참회란 성가신 일이 날마다 수도 없이 생기더라도 명랑함을 잃지 않는 것이며, 비록 일을 시작할 때 지녔던 열정을 순간적으로 잃었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고, 대접받은 음식이 무엇이더라도 신경 쓰지 않고 기쁘게 먹는 것입니다.

부모들에게, 그리고 대개 감독하거나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참회란, 필요할 때마다 바로잡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상황도 고려하고 잘못의 유형도 참작하여야 하며, 겁을 먹거나 감정적으로 되어 객관성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참회의 정신은, 우리가 그린 장밋빛 청사진, 절묘한 솜씨로 대성공을 거두는 미래 모습에 너무 집착하지 않도록 합니다. 우리의 3류 솜씨를 접어두고 모양과 색상을 주님의 선택에 맡긴다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생각나는 대로 이미 여러 이야기를 하였지만) 여러분이 날마다 하느님과 이웃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들을 더 자세하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제가 위대한 참회를 폄하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 길로 이끌어 주신다면, 오히려 그러한 참회는 매우 훌륭하고 거룩하며 필요하기까지 할 것입니다. 다만 언제나 여러분의 영적 지도자에게 허락을 받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교만의 결과인 타락의 심각성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참회를 하는 것이 적절하겠습니다. 다른 한편, 여러분이 계속해서 자그마한 것일지라도 내적 싸움에서 승리하여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를 열망한다면, 자신이 위대한 영웅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이나 교만이 스며들 여지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예컨대 웃고 싶지 않을 때에도 웃는 것입니다. 장담하건대, 웃음은 때때로 고행용 의복을 한 시간 동안 입고 있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우리는 사소한 것도 드릴 것이라고는 거의 없지만, 무엇이든 기쁘게 받아주시는 아버지를 둔 어린아이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극기 고행을 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다만 거기에는 사랑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2코린 4,7-10).

여러분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양심에 걸리는 이런저런 잘못들에 대하여 용서를 청하십시오. 말로 지은 죄들,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도는 덧없는 생각들, 지금은 걱정과 불안과 조바심만을 남긴 중대한 결정들에 대하여 주님께 자비를 청하십시오. 여러분이 행복해질 수 있음을 믿으십시오! 주님께서는 몸소 걸으셨던 행복의 길을 우리도 똑같이 걸어오면서 참으로 기쁘고 즐겁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다만, 자기 고집대로 그 길에서 벗어나 이기심과 육체적 욕망들을 추구하고, 더욱이 위선자의 길을 걸을 때에는 비참한 종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진실함과 충실함과 성실함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의 행위는 그리스도의 영을 반영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자기 신념대로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는 주님께 받은 선물을 활용하여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루카 19,13 참조). 그 선물이란 자유와 해방을 주는 진리입니다(요한 8,32 참조). 그러나 여러분은 저에게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그렇게 성실하게 살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에 필요한 모든 수단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기도하는 방법과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을 보여 주셨으며, 또한 우리 영혼 안에서 활동하시는 위대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성사라고 부르는 ‘은총의 가시적 표지들’을 남기셨습니다. 그것들을 이용하십시오. 더욱 경건하게 사십시오. 날마다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달콤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는 것을 거부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착한 제자로서 주님을 따름으로써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의 씨앗을 뿌리면서 세상 순례를 할 수 있도록 초대하신 분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우리는 삶도 죽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어떠한 고통과 슬픔에도 움츠러들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에게 고통과 슬픔은 정화의 수단이며, 어떠한 생활환경에서도 이웃에 대한 참된 사랑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많은 결심은 아니더라도 몇 가지 확실하고 구체적인 결심을 하도록 이끌고 싶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행복을 바라신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면, 비록 십자가 없는 순간이 잠시도 없을지라도, 여러분은 참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더 이상 사형 틀이 아닙니다. 그곳은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옥좌입니다. 그리고 그 곁에 주님의 어머니요 또한 우리 어머니께서 계십니다. 복되신 동정녀께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힘을 얻어 주시어, 당신 아드님의 발자국을 확고하게 따라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