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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느님의 친구들»에 미사 → 영성체 항이 있음.

성 마태오는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그때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마태 9,20). 이 여자는 얼마나 겸손합니까! “그는 속으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마태 9,21). 언제나 바르티매오처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의 믿음을 큰 소리로 고백하는 굳은 믿음의 소유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만나시는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전혀 닮지 않은 두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 여인도 굳은 믿음을 지녔지만 크게 소리치지 않습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예수님께로 다가갑니다.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 자신의 병이 치유되리라는 확신이 그 여인에게는 있었습니다. 여인이 그렇게 하자마자,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여인을 바라보십니다. 그분은 이미 여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계시며, 그 여인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태 9,22).

“그 여인은 조심스럽게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 여인은 믿음으로 다가갔습니다. 그 여인은 믿었고, 자신이 치유되었음을 알았습니다. … 우리도 구원받기를 바란다면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옷을 만져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우리의 믿음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겠지요? 겸손한 믿음이어야 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그리스도께 그러한 말씀을 들을 만합니까? 우리는 그분께 다가갑니까? 군중 속의 가엾은 여인에게 하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에게 당신의 옷자락 술을 조금 만지고 잠시 느끼도록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을 받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몸과 피, 영혼과 신성을 모두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분을 먹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에게 말하듯이, 사랑 자체이신 분께 말하듯이 친밀하게 대화를 나눕니다. 이 모든 것은 환상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성 바오로 사도와 더불어 거듭 이야기합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코린 13,1-3).

성체와 성혈의 성사를 약속하시는 우리 주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어떤 제자들은 투덜거렸습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 6,60)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도 어떤 사람들은 똑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묘사한 사랑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한 인류애, 인본주의 또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해와 동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향주덕의 실천을 요구합니다. 이렇게 하여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없어지고 신령한 언어도 그치고 지식도 없어집니다. …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 13,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