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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길»에 미사 → 영성체 항이 있음.

그대가 내게 편지했습니다. 

“독서를 함으로써 저는 연료창고를 짓습니다. 생명이 없는 장작더미처럼 보이지만 무심결에 기도를 ‘생명으로’ 가득 채워주고, 영성체 후 감사기도를 불타오르게 해주는 연료를 내 기억력이 그 창고에서 꺼냅니다”

훗날 순교했던 그 젊은 신부는 제대 아래서 울고 있었습니다. 대죄 상태에서 성체를 영하러 왔던 어느 영혼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대도 주님께 그렇게 보속을 드립니까?

성체를 매일 영한지 많은 해가 흘렀는데(다른 이들은 벌써 성인이 되었을 텐데) 저는 항상 이 모양입니다!”라고 그대가 말했습니다. 

나는 대답했습니다. 나의 자녀여, 계속 매일 성체를 모시면서 생각하시오. 성체를 모시지 않았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됐을까?

영성체, 일치, 교감, 신뢰, 말씀, 빵, 사랑.

성체를 모시십시오. 그것은 불경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대가 그‘유혹’을 극복했으니 바로 오늘 성체를 모시십시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잊었습니까? 의사가 필요한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환자입니다.

그분께서는 그대를 위해 이곳 지상에 남아계십니다. 만일 성체를 모실 준비가 됐는데도 영성체를 하지 않는다면 경의를 표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일한 불경은 그분을 부당하게 모시는 것입니다.

영성체 할 때 마음이 차갑고 메마르다고 걱정하며 슬퍼하는군요. 말해보십시오. 그대는 영성체 할 때 자신을 찾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찾습니까? 그대가 자신을 찾는다면, 슬퍼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가 그리스도를 찾는다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어떻게 십자가보다 더 확실한 표지를 원한단 말입니까?

영성체 후 감사기도를 드릴 때 어쩔 수 없이 그대의 입에 오르는 첫 기도가 청원기도라고요?… “예수님, 제게 이걸 주십시오. 예수님, 그 영혼을 위해서요. 예수님, 제 사업을 위해서 말입니다…”

걱정하지도 또 억제하려고도 하지 마십시오. 아버지가 선하고 또 아이가 단순하고 담대한 경우 녀석이 집에 돌아오신 아버지를 맞이하는 키스를 하기 전에 사탕을 찾으려고 주머니부터 뒤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그렇다면….

‘어린이의 삶’을 살고 있다면, 그대는 영적 달콤함을 즐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나이 또래 어린이 처럼, 어머니께서 준비해두신 것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하루에도 여러번 그렇게 하십시오. 그것은 단 몇초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성모 마리아… 예수님… 감실… 영성체… 하느님의 사랑… 고통… 연옥의 복된 영혼들… 투쟁하는 사람들… 교황성하… 사제들… 평신도들… 그대의 영혼… 그대 가족의 영혼… 수호천사들… 죄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