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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느님의 친구들»에 게으름 → 근면함 항이 있음.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마태 20,1). 여러분은 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있습니다. 포도밭 주인은 일꾼을 구하려 여러 차례 되돌아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른 아침에 부름을 받았고, 어떤 사람들은 거의 해 질 녘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습니다. “그분이 약속한 품삯은, 달리 말하자면 그분 자신의 모습이요 그분을 닮은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왕의 모습이 돈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그러합니다. 그분은 각 사람의 처지에 맞게 부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1티모 2,4). 우리의 경우를 보자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고, 신앙 안에서 자랐으며, 우리 주님께 명백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것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손짓하는 것을 느낀다면, 아무리 마지막 시간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많이 있는 것처럼 오랫동안 시장에서 서성대거나 햇볕을 쬐고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단 1초도 남는 시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과장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은 늘 있습니다. 이 세상은 넓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분명하게 듣지 못한 사람들도 아주 많습니다. 저는 여러분 각자에게 개인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남는 시간이 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도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초자연적으로 말해서, 영적 불구자일 수 있습니다. 움직임이 없이 정체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환경에서, 자신의 일터에서, 자신의 가족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하는 선행을 소홀히 하고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부지런함과 근면함은 하나로 어우러지는 인간적 덕목들입니다. 이 두 가지는 우리 각자가 하느님께 받은 재능을 힘껏 활용하도록 도와줍니다. 이 덕목들은 우리가 일을 제대로 끝맺게 이끌어 줍니다. 1928년 이래로 강조해 왔듯이, 노동은 저주가 아닙니다. 죄에 대한 벌도 아닙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담이 하느님을 거슬러 반역을 하기 전에 이미 노동이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계획에 따르면, 노동은 무한한 창조 활동에 참여하도록 운명 지어진 인간의 항구한 특성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시간을 잘 활용합니다. 시간은 단순히 돈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그는 자신의 일에 집중합니다. 그저 정해진 틀대로 하거나 시간을 때우듯이 일하지 않고, 주의를 집중해서 곰곰이 생각한 뒤에 일합니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을 의무로 여깁니다. 근면하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사용하는 ‘근면한’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어원에서 오는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근면하다’(diligent)는 단어는 ‘사랑하다’, ‘감사하다’, ‘주의를 기울여 심사숙고한 다음에 선택하다’를 뜻하는 라틴어 동사 ‘diligo’에서 유래합니다. 근면한 사람은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고, 사려 깊고 사랑 넘치는 마음으로 자신의 일을 합니다.

모든 면에서 온전한 인간이신 우리 주님께서는 육체노동을 자신의 일로 선택하시어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이 일을 하시는 데 지상 생애의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그분은 자기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목수 일을 하셨습니다. 이처럼 그분의 인간적이고 신적인 행동들은 우리의 일상적 활동들이 하찮은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일상적 활동들은 거룩함으로 통하는 관문이며, 하느님을 만나는 기회를 끊임없이 제공해 주고, 우리의 지성적이고 육체적인 노동을 통하여 주님을 찬미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기회를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