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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하느님의 친구들»에 게으름 → 일을 하면서 항이 있음.

장담하건대, 저는 제가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에 그 사람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거나 별다른 감동을 느끼지 않으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주제넘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1928년, 주님께서 저에게 바라시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저는 곧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주님 덕분에 힘든 일도 좋은 일도 많았던) 그때, 저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를 오해하여 몽상가,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몽상가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모든 상황과 저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저는 낙심하지 않고 계속 전진하였습니다. 그 일은 제가 주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길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많은 사람이 저와 함께하고 있으며, 이제 제가 하는 일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아주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 일이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사람과 단 몇 마디만 나누어 보면, 그 사람이 저의 말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모르는 손이 놓고 간 오리알을 품고 있는 암탉과는 다릅니다. 병아리들이 부화되는 데에는 많은 날들이 필요합니다. 암탉은 그 가운데 어떤 솜털 덮인 녀석이 뒤뚱거리며 걷는 것을 볼 때까지는 그 녀석이 자신의 새끼가 아니라는 것을, 또 그 녀석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닭 울음소리를 배우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저는 저에게 등을 돌린 사람들이나, 저의 호의를 무시하고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좋게 대했습니다. 대학생들에게 피정 지도를 하던 어느 건물에 새겨진 문구가 제 주의를 끌었습니다. “각 여행자가 자기 자신의 길을 가게 하라.” 그것은 아주 유용한 충고였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게 너무 관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경향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이러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쉽게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 또는 휴식이 충분한지에 대해서 지나친 걱정을 합니다. 물론 휴식이 필요합니다. 날마다 새로운 활력으로 일과 씨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 해 전에 이야기했듯이, “휴식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노력이 덜 요구되는 다른 활동들에 우리의 주의를 돌리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우리 어깨 위에 놓인 놀라운 책임들에 대하여 너무 느긋하고 그것들을 망각하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단지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우리는 또한 그릇된 합리화 속으로 숨으며 시간을 낭비합니다. 반면에 사탄과 그의 졸개들은 결코 쉬지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예전에 노예였던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이야기를 묵상해 봅시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좋아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진심으로 실행하십시오.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기쁘게 섬기십시오”(에페 6,6-7).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주인에게 복종할 것을 촉구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마땅히 따라야 할 좋은 충고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님께 빛을 주십사고 청합시다. 우리의 직업이 우리 자신의 성화 소명에 필요하고 또 유익한 것이 되도록 하는 그 신성한 의미를 매 순간 발견할 수 있게 도와주십사고 간절히 청합시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마르 6,3)이라고 불립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거룩한 자부심을 지니고 참으로 일하는 사람임을 행동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의 특사로 행동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일을 마치지 못한다면, 만일 다른 사람들보다 직업적으로 덜 노력하고 덜 희생한다면, 만일 부주의하고 믿음직하지 않으며 경박하고 무계획적인 사람으로 불린다면, 우리는 그분을 충실히 섬기는 것이 아님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덜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의무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영성 생활과 관련된 다른 의무들도 성공적으로 이행하지 못할 것이며, 아마도 더 어려워할 것입니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루카 16,10).

그러나 때로는 어떤 사람들이(그들이 선한 사람들이건, 아니면 ‘꽤 괜찮다’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건) 말로만 그럴싸하게 신앙 선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들이 보여 주는 것은 피상적이고 부주의한 직업적 행동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그리스도인을 만나게 된다면, 형제로서 바로잡아 주는 복음적 치료의 차원에서 애정을 간직하면서도 단호하게 그들을 돕는 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형제 여러분,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보면, 영적인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를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대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의 율법을 완수하게 될 것입니다”(갈라 6,1-2). 그들이 가톨릭 신자일 뿐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연장자이거나 더 많은 경험과 책임을 지닌 사람들이라면, 더욱더 그들에게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자신들의 일을 더욱 진지하게 성찰하도록 돕고, 마치 좋은 부모나 선생님이 하는 것처럼 그들을 잘 인도해서 긍정적 반응과 행동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모멸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됩니다.

성 바오로 사도께서 보여 주신 모범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우리를 어떻게 본받아야 하는지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 사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2테살 3,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