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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느님의 친구들»에 책임감 → 그리스도인의 책임 항이 있음.

복음서의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바리사이들은 “저희 제자들을 헤로데 당원들과 함께 예수님께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 … ’”(마태 22,16). 그들이 얼마나 교활하게 예수님을 ‘스승님’이라고 부르는지 주목하십시오. 그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을 존경하는 사람들이요 친구들인 체하면서, 가르침을 받고 싶어 하는 척합니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신 줄 압니다”(마태 22,16). 얼마나 간교한 속임수입니까! 여러분도 그러한 이중적 태도를 본 적이 있습니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분, 조심하십시오. 지나치게 조심하는 것도, 지나치게 의심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만, 카타콤바에 묘사된 착한 목자의 모습처럼 여러분 어깨 위에 놓인 그 길 잃은 양의 무게를 기억하십시오. 그 양은 단지 한 사람의 영혼이 아니라 온 교회, 온 인류를 상징합니다.

만일 여러분의 열정과 은총으로 이 책임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권리를 옹호하고 선포하는 일에 두려움과 더불어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은 여러분이 살아가는 모습을 전체적으로 보고는, 여러분을 스승으로 여기고 또 그렇게 부를 것입니다. 비록 여러분이 그렇게 불리는 데 어떠한 욕심도 없고 세속적 영광에 아무런 관심이 없을지라도 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단지 아부를 하려고 슬그머니 접근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그렇게 자주 들려주었던 말들을 영혼 깊숙이 새겨놓으십시오. 우리의 임무를 이행하는 여정에서 어떠한 중상모략이나 험담, 사람들의 존경, 남들이 하는 말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더더구나 위선자들의 칭찬을 물리쳐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누가 나에게 그러한 사도직에 동참하라고 말하겠는가?’ 하고 의심을 품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시고, 부탁하십니다.”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 쉬운 길을 선택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런 일에는 서투릅니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 분야가 아닙니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일에는 당신밖에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이 일에서 도망친다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럴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간청은 각각의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한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나이, 건강, 직업 등 어떠한 이유로도 자신을 변명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변명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도직의 열매를 맺든지, 아니면 자신의 쓸모없는 신앙을 입증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