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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느님의 친구들»에 덕 → 인간적 덕목은 초자연적 덕목의 기초임 항이 있음.

두 가지 관점을 생각해 봅시다. 하나는 세속주의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경건주의 관점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그리스도인들이 충분하게 인간적이지는 않다는 시각을 보여 줍니다. 세속주의 관점에 따르면, 복음의 요구들은 우리의 인간적 자질을 숨 막히게 하는 것들입니다. 반면에 경건주의 관점에 따르면, 인간 본성이 너무 타락해서 신앙의 순수성을 위험에 빠뜨리고 위협합니다. 결과는 둘 다 똑같습니다. 두 가지 모두 그리스도 육화의 충만한 의미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제로서 겪은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 반대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아무리 죄에 깊이 물들어 있고 또 그것이 겉으로 드러난다고 하여도, 그 고상함이 잿더미 속의 불씨처럼 흐릿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그 마음들에 귀를 기울이고 그리스도의 말씀으로써 각자에게 말을 걸면 그들에게서 언제나 대답을 듣습니다.

세상에는 하느님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를 갖지 못했거나 그 말씀을 잊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인간적 성품은 정직하고 충실하며 자비롭고 성실합니다. 저는 그러한 자질을 지닌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 호의적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적 덕목들은 초자연적 덕목들의 토대를 구성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인간적 덕목들을 키우려고 노력하기만 한다면, 이미 그 마음은 그리스도께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면, 향주덕(믿음, 희망, 사랑)과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주시는 다른 모든 덕들에 힘입어 수많은 이웃 동료들과 함께 나누는 삶을 등한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단언하건대, 인간적 덕목들은 초자연적 덕목들의 토대입니다. 이들 덕분에 우리는 선한 인간으로 살아갈 용기를 끊임없이 얻게 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이러한 덕목들을 바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덕목들을 실천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선행을 배워라”(이사 1,17). 각각의 덕목을 실천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참으로 성실하고 진실하고 치우치지 않고 침착하고 참을성 있게 노력해야 합니다. 사랑은 행동으로 증명됩니다. 말만으로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1요한 3,18)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