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 목록

10«길»에 하느님의 뜻 →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투쟁 항이 있음.

예수께서는 성부의 뜻을 이루시려고 고통받으십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성부의 가장 거룩하신 원의를 채워드리려는 그대가, 고통이라는 길동무를 만났다고 불평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내게 “예, 저는 원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대는 수전노가 황금을 사랑하듯이,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하듯이, 야망을 품은 자가 명예를 사랑하듯이, 방탕한 자가 쾌락을 사랑하듯이, 그렇게 원합니까? 

아니라고요? 그렇다면 그대는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까지 와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계속하려면 권력 실세들의 승인, 호의, 위로가 필요하다고요? 

권력 실세들은 자주 바뀌지만, 그대는 꾸준해야 합니다. 만일 그들이 도와주면 고맙게 생각하십시오. 그러나 설령 그들이 그대를 경멸한다 해도, 침착하게 그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합니다.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 아닌가? 저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 아닌가? Nonne hic est fabri filius? Nonne hic est faber, filius Mariae?” 

예수께 대한 이 말. 그대가 ‘결정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려고 할 때, 하느님의 도구가 되기로 마음 먹었을 때, 그대는 놀람과 조롱섞인 이 말을 들을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저 사람은 그 사람 아닌가…?”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그대가 하고 있는 일이 그대의 사명을 입증하게 하십시오.

문학에서, 정치에서, 군대에서, 교회에서(!) 뛰어난 인물들이 자신의 친척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줄 때 사람들은 얼마나 좋아합니까! 

원죄없으신 마리아님을 찬미하십시오. 그분을 이렇게 떠올리면서. 

기뻐하소서, 마리아님, 성부 하느님의 따님이시여! 

기뻐하소서, 마리아님, 성자 하느님의 어머니시여! 

기뻐하소서, 마리아님, 성령 하느님의 배필이시여! 

당신보다 더 위대하신 분은 하느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그대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신음없이 참아내려 합니다. 그대의 의지가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찾고 있는 한, 그대가 좀 신음한다 해도 나쁠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가련한 육신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우리는 완전한 자유 의지를 갖고 움직이고 느끼는 돌, 돌 덩어리입니다. 

하느님 자신은 모난 부분들을 깎아내는 석공이십니다. 망치와 끌로 우리를 때리고 털어내서 당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십니다. 

움찔 물러서거나 그분의 뜻을 요리 조리 피하지 맙시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그분의 망치질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쓸데 없는 고통을 더 당하게 됩니다. 건축하기 알맞게 반들반들 닦아놓은 돌 대신에,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짓밟고 무시하는 볼품없는 자갈더미가 될 것입니다.

굴욕감을 느끼게 한 바로 그런 일들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하느님께서는 높여주십니다.

악순환에 빠지지 마십시오. 그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만일 이일이 이렇게 또는 저렇게 해결된다면, 나는 하느님께 대단히 잘해드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대가 조건없이 관대해지기를 기다리시어 그일들을 그대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잘 해결해주시지 않을까요? 

논리적인 귀결로, 이 점을 확고히 결심하십시오. “매일 매순간 나는 하느님의 뜻을 충분히 실천하려고 노력하겠다”

몇초면 됩니다…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 생각을 하십시오. 

“이일로 하느님께서 내게 무엇을 원하실까?” 

그런 다음에,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일을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