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 목록

«밭고랑»에는 위선를 주제로 하는 12 항이 있음.

당신은 주위에 부자연스럽고 불신과 의심에 찬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냐면 체스 두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네 수 앞을 내다보고 내뱉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복음서를 주목해 보시길 바랍니다. 주의 깊은 위선적인 율법 학사나 파리사이파의 사람들이 슬퍼해야 할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에게 질문하고 의문점을 제시하는데, 이는 '예수의 말꼬리를 잡기' 위해 곡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신은 그런 태도를 취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사실대로 말한다고 싫은 내색을 할 바에야 왜 굳이 묻습니까?

혹시 당신의 실수를 정당화하고 싶어서 당신에게 맞는 진리를 기대했던 것은 아닙니까?

그들은 그리스도의 지성을 갖추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탈을 쓰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적인 기준을 모르고, 진리를 알지도 못하고, 결실을 맺지도 못한다고 서글프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들, 하느님의 자녀들은 주님께서 “누구이든 너희들의 말을 듣는 사람은 내 말을 듣는 것이다··· “라고 하신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가 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고, 비슷하게 다른 예수가 되는 것은 결코 허용되지 않습니다.

위선을 배양하는 사람은 반드시 불쾌하고 원한에 찬 희생의 삶을 살게 됩니다.

헤로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서 그 아기를 잘 찾아 보시오. 나도 가서 경배할 터이니 찾거든 알려 주시오.” 그러한 제안에 직면해서는, 겉으로 보기에 선의의 사람이라고도 보이는 사람들의 ‘보호’ 나 또는 ‘좋은 일들의 약속’을 피하게 해 주십사고 성령께 청합시다.

동방 박사들이 그랬듯이, 우리가 진실을 찾고 성실하게 말한다면 우리는 성령의 비추어 주심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대가 일들을 분명하게 말하기 때문예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아마도 그들은 불안한 양심을 가지고 살고 있고, 그래서 그들은 그런 양심을 그 방법으로 덮어 가리울 필요가 있는 것이겠지오.

그들이 변화하는 것을 돕기 위해, 그대는 계속 같은 방법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그대가 계속 당신 이웃의 의도를 나쁜 믿음으로 해석하는 동안에는, 그대는 사람들이 당신과 함께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할 권리가 없습니다.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개혁이 필요하다고 당신은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당신 자신을 개혁하십시오. 당신에게는 그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미 개혁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아무리 당신이 쇄신입니다, 개혁입니다 한들 믿을 일이 아닙니다.

너무나 위선적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정확히 그들 자신의 입술에서 나온 말을 되풀이할 때 분개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은 어쩔 수 없을 만큼 참견으로 이웃 사람의 생활에 코를 박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당한 의지가 강한 사람을 만나 기선을 제압당하자 모욕을 당한 것처럼 사람들 앞에서 탄식해 보입니다.

당신의 그리고 많은 이들의 철면피한 태도와 비뚤어진 양심도 이쯤 되면 끝입니다.

단 한 수로, 그대는 참된 의견의 “올바른 의견을 말하는 성실한 사람이라고 하는 평판”과 "반대 의견이 가지는 비열한 이점”이라는 양쪽 모두를 한 손에 넣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식은 어느 나라 말로도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얼마나 선량합니까! 그들은 오직 찬양할 가치일 뿐인 일을 “변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