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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밭고랑»에 사도직 → 사도직의 어려움 항이 있음.

그 사람 시간이 없다고요? 그게 낫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시간 없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자기를 그리스도와 맞대면하는 자리에 놓았다고 그가 그대를 나무랐다 해서, 또는 그가 격분해서 “이제 저는 결심을 하지 않는 한 마음 편히 살 수 없다”고 말을 더 보탠다 해서 놀라지 말고 겁먹지 마십시오.

그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를 진정시켜 보려고 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아마 옛날의 불안, 즉 양심의 소리가 전면에 떠올랐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고통을 일으키기 원치 않기 때문에, 그대는 하느님에 관해서, 그리스도인의 생활 관해서… 말을 꺼내기를 주지하는 것입니까? 부르심을 행하는 이는 그대가 아니고 주님이심을 그대는 잊었습니다. “내가 선택한 그들을 내가 잘 알고 있다.”

더우기 저는 안일을 추구하는 정신이나 뜨뜻미지근함이 잠복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단계에서 그대는 하느님의 우정보다는 보잘것 없는 인간적인 우정을 원합니까?

그대는 영혼들에 대한 열의에 빠져들었기 때문에 한 사람한테, 그리고 다른 한 사람한테, 그리고 또 다른 한 사람한테 이야기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겁을 먹었고, 다른 한 사람은〈분별 있는 사람〉과 상담해 잘못된 지도를 받았습니다.참고 계속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누구 하나도 후에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을 변명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도록 하십시오. 교양을 과시하고 싶기 때문, 자신의 무지라는 무기를 휘두르다 바보가 없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증오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봉사자로 자처하는 자들과 손에 손을 잡고 행진하는 일을 알게 되는 것은 몹시 슬픕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감정을 따라가기는 하지마는 하느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항해서 결속됩니다.

어떤 환경, 특히 지식인(인텔리)의 세계에서 여러 당파 공통의 지령과 같은 것이 중시되고 있으며, 이것이 명백히 감지되어 가톨릭 신자까지 이에 따를 때가 있습니다. 뻔뻔스럽게도 참을성 있게 중상을 계속하고, 그것을 펼쳐나가고, 모든 진리와 모든 논리에 어긋나면서도 교회와 사람에게, 또 조직에 대해 먹구름을 드리우는 것입니다.

매일 믿고 기도하십시오.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교회의 적을 표방하는 그들을 욕되게 하소서." 주여, 당신을 박해하는 자들을 우리가 전파할 결심을 하고 있는 당신 빛의 밝기로 욕되게 하소서.

가톨릭신앙이 사고가 오래되고 그래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까? 태양은 더 오래되었으나 그 빛을 잃지 않았고: 물은 더 옛것이기는 하나 여전히 갈증을 풀어 주고 우리들을 시원하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