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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밭고랑»에 사랑(애덕) → 자비 행위 항이 있음.

이기주의에 패배해서 사람들의 건전하고 즐거운 생활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다면, 또한 이기적으로 이웃의 물적 혹은 정신적 비참을 보면서 아무 느낌도 들지 않는다면 당신이 어떻게 하든 나는 엄한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약 그대가 그대의 동료들과 형제인 사람들에게 거룩한 형제애를 느끼지 않고, 그리스도인 자녀의 대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산다면, 당신은 불쌍한 버려진 아이라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일부사람들이 ‘자선행위’를 두서너 푼이나 얼마간의 옷가지로 이해하는 것을 보면 슬퍼집니다. 그들은 복음서를 읽은 적이 없었던 것같이 보입니다.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굴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충분한 신앙과 용기를 갖추고 살아생전에 필요한 것까지 아낌없이 기꺼이 내어놓을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우물쭈물하는 사람에게는 설명해 주십시오.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게 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다니, 인간적으로 봐서도 고상하지 않고 우아하지도 않는다고 말입니다.

“누구이든 무엇인가를 빌려 주고는 결단코 그것을 돌려받지 말 것이다. 만약에 그 사람이 그것을 돌려받는다면, 그것은 결코 전체 액수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전체라면, 그것은 정확하게 맞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그것이 정확하게 맞는다면 그 사람은 생명에 대한 원수일 것이다.”

글쎄 그렇다면?··· 값을 헤아리지 말고, 언제나 하느님을 위해서 주십시오. 그러면 인간적으로 보더라도 한층 더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자라고, 거기다 헛되게 수고하는 일이 덜 해질 것입니다.

저는 그 단순한 사람의 얼굴이 벌개진 것을 보았는데 그는 거의 눈물을 쏟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는 그가 번 정직한 돈을 내어 좋은 일들에 관대하게 기여했는데도 그는 “선한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부정직하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하느님의 전투에서 초심자의 솔직한 마음으로, 그는 투덜거렸습니다. “그들은 제가 희생을 치루는 것을 보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나를 희생시킨다!”

저는 그에게 천천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는 내 고상(苦像: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 친구(親口:입맞춤)하였고, 그의 분노는 평화와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저에게는 저를 도와 줄 사람이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영적으로 병들고 마비된, 쓸모있을 수 있을 —그리고 쓸모 있어야 할 많은 사람들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제가 영혼들에게 무관심한 채로 남아있지 않게 하옵소서.

대중들은 떠나가서 “정당화된 불평의 길”로 내려가고 있었고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을 계속합니다.

그것은 고통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영적으로나 또는 물질적으로 청빈한 사람들에게 불만을 품도록 만들었나요!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사람과 비천한 사람 사이에 한번 더 자리잡고 계시게 될지 모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그들과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교사가 가져야 할 소망. 많은 시간을 들여서야 비로소 알게 된 일들을 이번에는 단시간에 학생들이 이해하도록 열심히 노력하는 것.

‘모욕 일람’을 소중히 가지고 있다니, 이 얼마나 마음이 좁은 사람입니까. 그런 불쾌한 사람과는 도저히 같이 생활할 수가 없습니다. ‘항상 실행해야 할’ 보살핌이나 봉사 등의 수를 기록하지 않는 것과 같이, 진정한 애덕을 갖추고 있다면, 타인의 건방진 언행을 메모 하거나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참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인정합시다. 확실히 그 사람의 행동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는 비열하고 비난할 만한 태도를 취했고, 무릇 품위가 없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아무리 경멸을 받아도 당연하다, 라고 당신은 덧붙였습니다.

거듭 말하겠습니다, 그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찬성은 할 수 없습니다. 저 사람의 보잘것 없는 생활도 성스러운 것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목숨을 속죄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주님이 경멸하지 않으셨던 생명을 당신이 경멸해도 되는 것입니까.

어느 정도의 사면을 부여할 수 있는가, 이는 권위자의 권한에 비례합니다. 단순한 판사라면 설령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해도 유죄 판결을 받고 죄를 인정한 범인에겐 형을 집행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 나라의 원수라면 때로는 사면이나 대사를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통회한 사람을 항상 용서하십니다.

“도움을 청할 힘조차 없는 일부 남녀를 저는 압니다”라고 그대는 저에게 슬픔과 실망으로 말해 줍니다. 그들을 궁지에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그대가 당신 자신과 그들을 구하려는 소망은 그들의 회심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거기다 또 만약에 그대가 그 일에 관해서 조심스럽게 생각한다면 그대는 누군가가 그대에게 도움을 주리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하느님한데서 무척이나 멀리 떨어져 있고 길을 잃은 저 땅의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일깨워 줍니다. “그들은 마치 목자 없는 양들과도 같다.”

그리고 당신도 그대의 마음속 깊이 강한 동정으로 채워집니다. 그대가 지금 있는 곳에서 그대의 목숨을 모든 사람을 위한 번제물로 내놓을 것을 결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