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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밭고랑»에 걸림돌 → 중얼거림 항이 있음.

사람들은 뒤에서 험담하고 "이런 소문을 들었어"라고 말을 하게 만드는 것도 그 사람들입니다. 네, 확실히 미천한 방법입니다.그러나 평안을 잃지 않습니다. 당신이 옳은 뜻을 가지고 일하는 한 그들의 혀가 해롭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얼마나 멍청하고, 이 얼마나 무식한 패거리인가. 형제에 대해, 특히 하느님에 대해 충성심이 결여되어 있는 것, 실로 심하지 않습니까.

반박할 권리를 잘못 해석하고 험담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꼭 해야 할 말이 있다면 복음서의 권유에 따라 형제적 설유를 활용하십시오.

그대는 그것을 믿기를 원치 않았지만, 그대는 손해를 감수하며 증거에 굴복해야 했습니다. 그대가 단순하게 그리고 건전한 가톨릭적 의미로 만든 그 진술들이 신앙의 적들에 의해 악의로 뒤틀려져 버렸습니다.

“우리들은 비둘기같이 온순하고 뱀같이 슬기로워야 한다”는 것은 진실입니다. 장소가 아닌 데서나 옳지 않은 때에는 말하지 마십시오.

실컷 비방을 당한 어떤 사람이 한번은 말하기를 그는 가장 작은 마을이 수도이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가엾은 사람인 그는 그곳에서도 꼭 같으리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하느님과 당신 이웃에 대한 사랑을 위해서는, 그같은 작은 마을의 결함에 빠져들지 마십시오. 그것은 너무나 그리스도인답지 않습니다. 성경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 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얼마나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가를 보라.” 이 말을 모든 경우에 그대와 나에게 적용하여 말할 수 있습니까?

사도직의 사업에 대한 비판은 통상 다음의 두 가지에 관한 것입니다. 그 일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 극히 복잡한 구성으로 제시되는 경우와,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을 편하고 쉽다고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종당에 그러한 “객관성”은 적절한 분량의 쓸데 적은 소리가 투입된 편협성으로 졸아듭니다. 고민하지는 마십시오. 그러나 그들에게 화내지 말고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그대는 그대의 신앙이 요구하는 것들에 대한 이해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나, 최소한 존중해 줄 것을 요구해야 합니다

하느님에게 충실한 친구에 대해 나쁘게 말한 사람들이야말로 그대가 좀 더 착하게 행동하기로 결심했을 때 그대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