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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밭고랑»에 진실 → 진리에 대한 충실과 사랑 항이 있음.

허약함으로 인해서, 즉 우리가 부서지기 쉬운 진흙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실수를 저지르기는 하지만, 교회의 교리를 완전무결하게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용감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영웅적인 겸손의 마음으로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열심히 진리를 옹호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부모들 교사들, 영적 지도자들이 절대적인 성실성을 요구하고서는, 그들이 진실을 모두 들었을 때 놀란다면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대는 십자고상 앞에서 기도하고 있었고, 이런 결심을 하였습니다: 진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것이 나 때문에 진리가 고난을 당하는 것보다 낫다.

그대가 진리는 크게 존중하고 있다고 보증합니다. 그러니까 그대는 ‘공손한 태도로’, 항상 진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것입니까?

어리석고 완고한 사람을 납득시키기란 어려운 법입니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사람이 상대가 아닌 한 모순들을 제거해줄 가치는 있습니다. 인내와 인내를 거듭해도 밝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자기네들 자신의 머리 속에 가지고 다니는 것 이외의 것은 아무 것에도 귀기울이지 않습니다 —귀기울이기를 원치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라고 남들에게 요구하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지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대는 그토록 비열한 의도를 가지고 보고 듣고 말합니까? 왜 타인의 의향 가운데가 아니라, 실은 그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나쁜 일들”을 타인의 마음속에서 찾아내려고 하는 것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 사도직의 사업을 중상하고 비방한다고 그대는 말하는 것입니까? 좋습니다. 그대가 진실을 선포하자마자 적어도 비판하지 않는 사람 하나는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공격적인 논쟁으로는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리고 그 사례를 토의하는 사람들 가운데 광신자가 들어있을 때에는 일이 결코 정리되지 않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대는 제가 최근에 유행하는 경향을 고려하지 않고 똑같은 긴요한 일들을 똑같은 방법으로 되풀이하는 것을 반대합니까? 보십시오, 직선은 수세기 동안 똑같은 방법으로 정의되어 왔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간명한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정의들은 더 모호하고 복잡할 것입니다.

거짓말하는 데는 여러 측면이 있습니다: 과묵, 음모, 비방···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비겁한 자의 무기입니다.

뒷전에서 험담하는 자에게는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나는 그 관련자에게 일러 줄 것이오” 또는 “나는 그에게 그 일에 관해서 말할 것이오”.

이 충고는 그대를 위한 것이니, 그것은 그대가 아직 젊고 그리고 방금 그대의 길을 따라 출발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에든 참여하시므로, 그대가 후에 그대의 생각을 더 효율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게 되도록 직업적으로 뛰어나도록 해보십시오.

“등불을 켜서 그것을 뒷박 밑에 놓지 않고 등경 위에 놓습니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비칩니다. 이처럼 여러분의 빛이 사람들 앞에 비치어, 그들이 여러분의 좋은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지상에서의 주님의 마지막 시간에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가르쳐라.” 주님께서는 자기 제자들의 행위와 말에서, 그리고 그대의 행위와 말에서도 주님의 빛을 비치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도록 하십시오. 교양을 과시하고 싶기 때문, 자신의 무지라는 무기를 휘두르다 바보가 없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설령 좋은 목적을 위한 것일지라도 역사나 사람의 생애를 왜곡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교회를 박해한 적을 찬양하는 것은 예삿일이 아닙니다. 확신하십시오. 칭찬하지 말아야 할 일을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하지 않는다고 해서 역사적 진실에 해를 끼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대체 언제부터 증오가 모범이 된 건지요.

타인을 짓밟는 사람에 대해서도, 애덕이라는 이름 아래, 세밀함과 이해를 가지고 대한다, 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저는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이 세세함과 이해가 악이 저질러지게 내버려두면서, 인간적인 존경을 위한 그리고 자기네들 자신의 편함을 찾기 위한 위장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그렇다면 이 세세함과 이해는 단순히 하느님께 죄를 범하는 공범일 뿐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