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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되고 불의한 자에게서 저를 구하소서”(시편 43,1: 성주간 화요일 미사 화답송). 다시 한 번 ‘참된 하느님다움’에 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하느님다움’이 있다면, 우리 눈은 우리가 하찮은 진흙으로 만들어졌음과 우리 안의 모든 악한 성향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하느님께 간청할 것입니다. “당신의 빛과 당신의 진실을 보내소서. 그들이 저를 인도하게 하소서. 그들이 저를 당신의 거룩한 산으로 데려가게 하소서”(시편 43,3: 성주간 화요일 미사 화답송). 저는 이 화답송을 바치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음을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참된 하느님다움’을 갖추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겠습니까?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유다에서는 돌아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요한 7,1). 그분은 단순히 바라기만 하면 적들을 없애실 수 있으셨지만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시기도 했습니다. 하느님으로서 단순히 바라기만 하면 상황을 바꿀 수 있으신 그분께서는 여기서 놀라운 가르침을 남기셨습니다. 유다 지방으로 가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이곳을 떠나 유다로 가서, 하시는 일들을 제자들도 보게 하십시오’”(요한 7,3). 그들은 그분에게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도록 부추겼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입니까? 이것이 ‘참된 하느님다움’과 ‘거짓 하느님다움’에 관한 가르침인 것이 보입니까?

‘참된 하느님다움.’ 성주간 화요일 미사에 이런 기도문이 있습니다. “당신 이름을 아는 이들이 당신을 신뢰하니, 주님, 당신을 찾는 이들을 아니 버리시기 때문입니다”(시편 9,11). 이제 부서진 조각들이 다시 붙어 아름다워진 질그릇들이 겸손한 기도를 기쁘게 바칩니다. “가련한 이들의 울부짖음을 아니 잊으십니다”(시편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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