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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세상에는 위와 같이 겁 많고 경솔한 방식으로도, 비록 초자연적 동기는 아니고 단지 인류애에 따른 것이지만, 고귀한 이상을 추구하는 강직한 개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온갖 역경에 부딪힙니다. 그들은 기꺼이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며,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줍니다. 저는 그들이 고귀한 이상을 위하여 온 마음을 다해 끈기 있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언제나 감동하고 존경심까지도 생깁니다. 그렇지만 제가 여러분에게 상기시켜 드려야 할 점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단지 우리 자신의 일이라면 그 시작부터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내 손이 이룬 그 모든 위업과 일하면서 애쓴 노고를 돌이켜 보았다. 그러나 보라, 이 모든 것이 바람을 잡는 일. 태양 아래에서는 아무 보람이 없다”(코헬 2,11).

이러한 불안함이 희망을 질식시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의 세속적 노력이 무의미하고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참된 희망을 향한 길이 열립니다. 그 희망은 모든 인간적 노력을 승화시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지점으로 바꾸어 줍니다. 꺼지지 않는 불빛이 우리의 모든 일을 비추어 실망의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운 세속적 계획이 그 자체로 끝나 버리고 우리의 영원한 본향과 창조 목적, 곧 하느님을 사랑하고 찬미하며 하늘에서 영원히 그분을 차지하도록 창조되었음을 시야에서 흐리게 하고 만다면, 아무리 빛나는 노력도 반역에 불과하며, 심지어 동료들까지 타락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자신이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그분 밖에서 행복을 찾던 때의 쓰라린 경험을 탁월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주님, 주님을 위하여 저희를 내셨기에, 주님 안에 쉬기까지는 저희 마음이 찹찹하지 않삽나이다.” 모든 것을 부족함 없이 채워 주시는 사랑이신 한 분 하느님 말고 다른 것에 희망을 둠으로써 자신의 희망을 더럽히고 타락시키고 말았다는 자기 환멸보다 더 큰 비극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저에게 일어난 일이 여러분에게도 똑같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저의 감성과 지성으로 확신하는바, 제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은 제 마음을 참된 희망으로 가득 채웁니다. 그 희망은 초자연적 덕이지만, 우리에게 부어지면 우리 본성에 적응하여 매우 인간적인 덕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끝까지 충실하면 하늘나라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저는 행복합니다. 제가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저를 기쁘게 합니다. “주님은 선하신 분”(시편 106,1)이시고, 주님의 자비는 무한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확신 덕분에 저는, 하느님을 담고 있는 것들만이 지워지지 않는 영원함을 드러내고 항구한 가치를 지닐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희망은 이 세상의 것들로부터 저를 분리시키기는커녕, 새로운 방식, 곧 모든 것 안에서 우리의 타락한 본성과 창조주요 구원자이신 하느님 사이의 관계를 발견해 내는 그리스도인다운 방식으로 세상의 현실에 더욱 가까이 접근하도록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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