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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마음을 하느님께 향하고 특별히 시간을 내어 봉헌해야 합니다. 입을 열어 말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이미 찬송이 울려 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위하여 시간을 충분하게 내십시오. 그리고 되도록이면 시간을 고정시키십시오.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감실 안에 남아 계시는 그분께 가까이 다가가십시오. 감실 앞으로 갈 수 없다면, 어디에서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은총 속에 있는 모든 영혼 안에 신비롭게 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충고하건대, 할 수만 있다면 그때마다 기도실로 가십시오. 저는 이때 경당이라고 하기보다 기도실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예식을 거행하는 공식 장소가 아니라, 하느님께 마음을 들어 내밀한 기도를 바칠 수 있는 곳임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확신하는 대로,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지켜보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며, 성체의 형태로 감추어져 계시지만 참으로 현존하시는 감실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여러분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그분과 대화를 나누는 법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방법이나 형식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의 자유도 구속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제가 하려는 일은, 모든 사람이 우리 주님께 더욱 가까이 가도록 격려하고, 모든 영혼을 있는 그대로 각자의 특성대로 존중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삶 안에 당신의 뜻과 계획을 불어넣어 주시도록 간청하십시오. 우리의 머리뿐 아니라,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그리고 우리의 모든 외적 행동에까지 불어넣어 주시기를 간청하십시오. 단언하건대, 여러분은 이렇게 함으로써 수많은 실망과 이기심의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여러분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결코 저버리지 않으시는 하느님 곁에 마음을 두는 사람에게는 온갖 장애물이 사라질 것입니다! 병들고 절뚝거리는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늘 새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주님께서 “문제가 무엇이냐?” 하고 물으십니다. 이에 우리는 “저의 문제는 …” 하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빛이 밝아 옵니다. 아니면 적어도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거나 내적 평화를 얻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은, 특히 어려움들이 있을 때에 주님을 신뢰하며 마음을 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대부분 교만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교만은 때때로 저 깊숙한 곳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대단히 중요한 사람으로, 특별한 자질을 갖춘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것을 인정해 주지 않으면, 모멸감을 느낍니다. 바로 이때가, 기도하기 좋은 때이고 우리의 그릇된 태도를 고칠 때입니다. 우리의 잘못된 길을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되도록 빨리 시작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기도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교만은 겸손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면 참된 기쁨이 마음속에서 샘솟을 것입니다. 비록 우리 영혼의 날개들에 진흙이 엉겨 붙은 것처럼 느낄지라도, 이제 우리 비참함의 진흙들이 마르기 시작합니다. 만일 우리가 극기와 고행을 실천한다면, 더러운 흙들은 떨어져 나갈 것이고, 하느님 자비의 강풍에 힘입어 저 높이 솟구쳐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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