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선택

헌신. 저는 이 말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요!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주님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야 할 의무를 자유로이 받아들여서 주님께서 우리 삶의 절대적이고 완전한 주인이 되시도록 노력합니다.

거룩함. 참다운 거룩함은 거룩함을 담은 잔에서 흘러넘쳐서 그 넘치는 거룩함으로 다른 이들의 마음을, 다른 이들의 영혼을 채웁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다른 이들을 거룩하게 함으로써 거룩해집니다. 그대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 정신이 전파되고 있습니까? 이것을 매일 매일 생각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 이것은 바로 우리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이여, 관대해지십시오! 주님께서 그대 안에서 다스리시고자 하시는 여러 이유를 어느 하나라도 알려고 들지 마십시오.

그대가 주님을 바라볼 때는, 주님께서 얼마나 그대를 사랑하시는지를 묵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 사랑에 응답하고픈 갈망으로 그대는 지금 참으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소리치고 싶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가 주님을 떠나지 않는다면 그분께서 그대를 떠나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대는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길로 데려가는 첫 단계는 그대가 행복하고 평온하며 하느님께 나아간다고 확신하는 것을 그들이 보는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는 다음 같은 핵심 관념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곧 우리는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그 누구도 배격하지 않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가까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대는 유순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가는 길에 장애물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대가 성덕을 추구하고 있다는 명백한 표징을 ‘건강한 심리적 편견’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대가 다른 이들을 하느님께 더 가까이 데려가기 위해 그대 자신을 잊은 채 늘 다른 이들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는 그대를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그대의 영혼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그분은 당신 마음의 사랑 지극한 자비에서 그대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오류를 범하는 이들을 애정으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으로 대하십시오. 그렇지만 우리의 거룩한 믿음을 거스르는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마십시오.

감미로우신 마리아,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우리의 어머니이신 분께 의지하며 모든 인류의 영혼과 육신을 순결하게 보살펴주시도록 그분께 맡기십시오.

그대는 그분께 전구를 청하며 다른 이들도 끊임없이 전구를 청한다고 말씀드리십시오. 또 하느님의 자녀들을 적대시하는 이들과 맞서 싸울 때는 언제나 승리하고 싶다고, 나쁠 때나 좋을 때, 아주 좋을 때도 승리하고 싶다고 말씀드리십시오.

그분이 세상에 오신 것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대가 수많은 사람과 함께 일할 때, 그리스도께서 관심을 두시지 않는 영혼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마시기를!

그대가 주님께 말씀드리고 있었지요. “주님, 주님께 감사드리기를 좋아합니다. 저는 모든 사람에게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언제나 말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대는 돌이 아닙니다. 말이 없는 나무도 아니며, 노새도 아닙니다. 그대는 여기 이 지상에서 끝나고 마는 그런 피조물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그대를 당신의 자녀로 삼고자 하셨기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대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그대는 감사드리기를 좋아합니까? 그리고 주님과 함께 특별한 일을 할 것입니까? 날마다 그대의 마음으로부터 감사가 쏟아져 나오도록 하십시오.

이해하는 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그대가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그대는 아무에게도 차별을 두지 않는 넓은 마음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그대를 나쁘게 대한 사람들에게도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이들은 모두 나에게 오너라. 네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권고를 그대는 그대로 실천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십시오. 그리고 더욱 큰 이유에서 하느님을 아는 이들을 똑같이 사랑으로 대하십시오. 그대가 하느님을 아는 이들을 사랑으로 대하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사랑으로 대할 수 없습니다.

그대가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참으로 사랑한다면, 그대는 그 큰 사랑의 필연적인 결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이웃 사랑의 실천이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대는 누구에게도 절대로 적대감을 지니지 않을 것이며,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하려는 저 욕구, 저 신적 광기를 지니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대의 일상생활 속에서 고행하고 기도하며 그대의 의무를 이행하고 온갖 세세한 일에서 자신을 극복하십시오.

천천히 그분께 말씀드리십시오. “선하신 예수님, 제가 사도가, 사도들 가운데 사도가 되고자 한다면, 저를 아주 비천하게 해 주십시오.

제가 저 자신을 알게 해 주십시오. 저 자신을 알고 당신을 알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것이 그대가 일해야 하는 방식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인간적 마음을 지니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어떤 특정인을 위해 움직인다면 옳은 일이 아닙니다. 그대의 형제, 그대의 친구를 위해서도 행동해야 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행동하십시오.

교회가, 모든 대륙의 사람들이, 모든 시대의 사람들이 곧 현재와 미래의 사람들이 그대에게서 많은 것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그대가 거룩하지 않다면, 더 낫게 표현해서 그대가 성인이 되려고 분투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무용지물이 되리라는 점을 그대 머리와 마음에 확고하게 새겨야 합니다.

은총이 부드러운 힘으로 또는 세찬 타격으로 그대를 형성하도록 하십시오. 그대는 장애물이 아니라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대가 원한다면, 성모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물길을 바꾸어놓는 바위가 아니라 그 물길이 흐르도록 하는 수로가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주님, 제가 옹기장이 손에 든 진흙과 같이 당신께 충실하고 순종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할 때 제가 아닌 저의 사랑 당신께서 제 안에 사시고 활동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대에게 그대가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큰 애정을 지니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그 사랑은 예수님에 대한 그대의 애정을 조금도 앗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더 사랑할수록, 그대의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여지가 더 많아질 것입니다.

피조물이 하느님께 더 가까워질수록 그 피조물은 더욱 보편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 마음이 넓어져, 우주를 예수님 발아래에 두고자 하는 단 한 가지 큰 원의 속에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위한 여지를 둡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불과 서른세 살이셨습니다. 젊다는 것이 변명의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어쨌든 하루하루가 흘러가면서 그대의 젊음도 사라져 갑니다. 그렇지만 그분과 함께 영원한 젊음을 누릴 것입니다.

민족주의를 배격해야 합니다. 민족주의는 이해와 공존을 방해합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시기에 민족주의는 가장 악한 장벽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민족주의가 교회 몸 안에 발을 들이려고 할 때 더욱 강력하게 배격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의 일치가 더욱 선명하게 빛을 발해야 하는 곳이 교회 몸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녀여, 그대는 주위 영혼들을 돕기 위해 지금까지 무엇을 해 왔습니까?

그대는 그렇게 소극적이고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그분께서는 그대의 본보기를 통해, 그대의 말을 통해, 그대의 우정을 통해, 그대의 섬김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다가가기를 원하십니다.

희생하고 내어주십시오. 마치 보석을 하나하나 소중히 다루듯이 영혼들을 하나하나 소중히 다루십시오.

나아가 그대는 더욱 큰 노력을 쏟으십시오. 더할 나위 없이 값진 것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집중해야 하는 목적은 하느님을 섬기기 위한 좋은 도구들을 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영혼들 하나하나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피로 속량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 특히 사제가 된다는 것은―세례받은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다는 것을 명심하면서―언제나 십자가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대가 일관적이라면, 그분의 빛을 보았으니 한때 죄인이었던 만큼 이제는 훌륭한 성인이 되고자 할 것입니다. 또 그런 바람이 실현되도록 분투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을 실현하기 위하여 잘라내야 할 것을 잘라냄으로써 권위를 행사하는 것은 교만이 아니라 용기입니다.

때때로 그대는 그대의 손을 묶어야 합니다. 그것은 모욕하는 것도 무례한 것도 아닙니다. 존중하고 자중하기 위해서입니다. 보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징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치료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대는 나를 무척 진지하게 쳐다보는군요. 하지만 마침내 그대는 내 말뜻을 알아들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지요. “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묵상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삶을 재현하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처럼 행동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말하도록 하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성체 안에 머무십니다.

그분은 성체 안에 머물러 계시면서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대하곤 했는지, 또 그대는 당신을 어떻게 대하곤 했는지를 아십니다.

그분이 성체 안에 머물러 계신 것은 그대가 당신을 모시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대가 당신을 방문해서 그대에게 일어나는 일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감실 옆에서 그대가 기도하면서 또 성사를 통해 당신을 모시면서 당신께 말씀드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하여 그대가 날마다 더욱더 사랑에 빠지고 다른 영혼들, 많은 영혼이 같은 길을 걷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대는 거룩한 가난을 살고 싶다고, 그대가 사용하는 것들로부터 초탈하고 싶다고 내게 말합니다. 이 질문을 그대 자신에게 해보십시오. ‘나는 부와 가난에 관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니신 것과 같은 애정과 감정을 지니는가?’

나는 그대에게 이렇게 권고했지요. “아들이 신뢰로 가득 차서 모든 것을 아버지께 내맡기듯이 아버지 하느님의 품에 쉬면서, 청빈의 덕을 사랑하기 위해 특별히 가난의 덕에 그대의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가난을 짊어져야 할 십자가로 보는 대신에 그대를 위한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의 표징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때때로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의 계명이 지니는 최상의 가치를 그들의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저 경탄할 마지막 설교에서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이런 말씀을 유언으로 하셨습니다.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그런데 그분은 더 나아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한다면 이것으로 모든 사람은 너희가 나의 제자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분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기로 우리가 마음먹을 수만 있다면!

신심은 우리를 하느님과 가깝게 묶어주고 하느님을 위해 다른 이들과도 가깝게 엮어주는 끈입니다. 그들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보기 때문입니다. 신심이 없으면, 불화가 올 수밖에 없고 불화가 오면 그리스도교 정신을 모두 잃게 됩니다.

주님께서 지니신 지성과 의지의 저 경탄스럽고 놀라운 힘에 대해 마음을 다하여 감사드리십시오. 그분은 그 힘으로 당신을 창조하고자 하셨습니다. 그 힘이 경탄스러운 것은 그대를 당신과 비슷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 힘이 놀라운 것은 그 힘으로 창조주에게 맞서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가 우리의 이 아버지께 지금 그리고 항상 드려야 할 감사를 요약할 수 있는 말은 이 말인 것 같습니다.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내적 삶과 양성 없이는 진정한 사도직 활동 또는 결실을 내는 활동이란 없습니다. 활동이 위태로울 뿐 아니라 험하고 또 허구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니 하느님 자녀로서 우리의 책임이 얼마나 큰지요! 우리는 하느님과 그분의 가르침에 굶주리고 목말라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저 착한 친구에게 창피를 주고자 그의 영혼이 이류 또는 삼류라고 말했습니다.

그 친구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에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 사람은 단지 하나의 영혼만을 지닙니다. 제게도 제 영혼은 오직 하나일 뿐입니다. 그래서 각자에게 그의 영혼은 일류입니다. 저는 제 목표를 낮추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영혼은 ‘바로 일류’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도움으로 저는 제 영혼을 정화하고 희게 하고 불타오르게 하여 저의 사랑하는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대는 잊지 마십시오. 비록 그대가 자신이 비참하기 짝이 없다고 여기더라도 그대 또한 “목표를 낮출” 수는 없습니다.

그대는 혼자이고 주변 환경이 그대에게 공격적이라고 불평하는군요.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어진 농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상처 입은 손으로 마치 밀알을 쥐듯이 당신 자녀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꽉 쥐고 계십니다. 당신의 피로 우리를 흠뻑 적셔 정화하시고 깨끗하게 만드시고 취하게 하십니다. 그런 다음에 그분은 너그러이 우리를 한 사람 한 사람씩 세상에 내보내십니다. 밀은 자루째 심는 것이 아니라 한 알씩 뿌리기 때문입니다.

나는 강조합니다. 주님께서 당신 자녀인 우리에게 ‘말씀의 은사’를 주시어 우리가 하는 말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해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내가 이 ‘말씀의 은사’를 원하는 이유는 복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느님 말씀을 천시하거나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가르침을 구체화하고 영적인 것을 조명하는 비유들이, 보기들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배운 사람과 덜 배운 사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이러한 인간적인 이미지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메시지를 더 쉽게 성찰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뿌리시는 씨앗이 지금뿐 아니라 언제나 다양한 환경 속에 거룩하게 흩뿌려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또한 그렇게 흩뿌려지는 씨앗이 그 강도를 잃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대는 그 강도를 잃지 않게 할 확실한 그리고 초자연적인 사명을 지닙니다.

그렇습니다. 그대 말이 맞습니다. 그대는 얼마나 비참한지요! 그대가 자신의 노력만으로 한다면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어디까지 갔을까요?

“자비로 가득한 사랑이신 분만이 저를 계속 사랑해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그대는 인정했지요.

힘을 내십시오. 그대가 그분을 찾는다면, 그분께서는 당신의 사랑과 자비를 그대에게 베푸시기를 거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대는 세상에 있는 많은 영혼이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영혼이 그 사랑을 깨닫도록 그대가 도와주었는지를 헤아려야 할 때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다른 이들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그들을 잡아끌기 위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고 또 증언합니다. 자신이 다른 분위기에 지배당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 자녀의 고유한 분위기, 곧 그리스도의 분위기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대는 주변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잠들어 있는 그들을 깨우고, 이기적이고 안락하게 사는 그들에게 다른 넓은 지평을 열어주며, 더 거룩하게 살도록 해주고, 자신을 잊고 다른 이들의 문제를 이해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대는 저 기쁨과 평화가 필요한 형제들에게 좋은 형제가 아닙니다. 그대의 형제들은 그 기쁨과 평화를 알지 못하거나 잊어버렸을지 모릅니다.

내가 언젠가 썼듯이, 거룩한 교회의 자녀들은 익명의 대중들, 곧 양 떼들을 걱정하지 않고는 평화로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무관심해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숭고한 열정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가능성이 얼마나 큰지요!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우리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두 손을 얹어 그들을 되살리고 그들의 마음을 밝게 비추고 그들의 의지를 굳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들은 쓸모 있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붙잡았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듯이, 저 역시도 하느님께서 저를 붙잡으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그대에게 말합니다만, 하느님께서는 우리 삶을 복잡하게 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우리에게 청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그냥 개입하십니다. 그것으로 끝!

주님, 오로지 당신께 신뢰합니다. 제가 당신께 충실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저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당신 손에 내맡기고 당신을 충실히 섬기기에 온갖 것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받은 이 놀라운 부르심에 깊이 그리고 자주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감사가 겸손과 긴밀하게 결부된 참되고 깊은 감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가 하느님 자녀에 드는 특권은 최고의 행복이며 언제나 과분합니다.

하느님 아들의 저 외침,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부족하다는 탄식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찢어지게 하는지요.

그 외침은 그대 또한 들으라고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그대는 지금까지 그 외침에 어떻게 응답했습니까? 그분의 이 지향을 위해 적어도 날마다 기도합니까?

주님을 따르기 위해 그대는 주저하지 않고 단호하게 자신을 전적으로 내어놓아야 합니다. 되돌아갈 여지가 전혀 없도록 단호하게 배들을 불살라 버려야 합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 초기 정복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에르난도 코르테스(Hernando Cortes, 1485-1547)는 1519년 맥시코 유카탄반도에 상륙하자마자 병사들이 후퇴할 마음을 가지지 못하도록 타고 온 11척의 배를 모두 불살라 버렸다고 합니다. 배수의 진을 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대에게 더 많은 것을, 심지어 그대 가족의 행복까지도 요구하실 때 겁내지 마십시오. 초자연적 관점에서 볼 때 그분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위해 그대 가족 전부를 뛰어넘는 권리를 지니신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으십시오.

그대는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니 무척 기쁩니다.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항구한 인내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말과 생각과 마음에서 나오는 그 어느 하나도 하느님께 속하지 않은 것이 없고 영혼을 위하지 않은 것이 없고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우리를 하느님께 인도하지 않는 것이 없음을, 또는 적어도 그대를 하느님께 멀어지게 하지 않아야 함을 명심하십시오.

교회는 사제들을 필요로 하고 앞으로도 항상 필요로 할 것입니다. 사제들을 위하여 날마다 성 마리아를 통하여 복되신 삼위일체께 간구하십시오.

그리고 그들이 쾌활하고 열심히 일하며 효과를 거두도록 기도하십시오. 또 잘 양성되도록 기도하십시오. 나아가 자신이 희생물이라고 느끼지 않고 형제들을 위해 기쁘게 희생하도록 기도하십시오.

하느님의 어머니시며 인류의 어머니이신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 끊임없이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그분은 어머니의 온화함으로, 그대가 만나는 이들이 자신들의 직업에서, 일상 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증인이 되겠다고 결심하도록 그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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