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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친구들»에는 영웅적 행동를 주제로 하는 2 항이 있음.

이제 하늘에 계신 복되신 어머니께 우리를 당신 팔로 안아 주시고 아드님의 자비를 얻어 주시도록 기도할 때입니다. 그리고 몇 가지 실천 사항을 결심해 보십시오. 하느님과 여러분 자신이 아주 잘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발전을 가로막는 사소한 결점을, 비록 아픔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끊어버리십시오. 교만, 관능적 욕망, 그리고 초자연적 실재에 대한 불감증은 서로 힘을 모아 여러분에게 속삭일 것입니다. “그래? 하지만 그것은 얼마나 하찮고 대수롭지 않은 일인가!” 유혹에 속아 넘어가지 말고,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그래, 이번에도 나는 거룩한 부르심에 나를 맡길 거야.” 사랑은 특별히 작은 일에서 드러나므로, 여러분은 옳은 결심을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희생은, 비록 아무리 어려운 것일지라도, 대개는 아주 사소한 행위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심장 박동처럼 멈추지 않으며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귀중합니다.

위대하고 특별한 사건의 영웅들 가운데 어머니는 얼마나 많이 있었을까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저는 진정한 영웅인 어머니를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화려하게 묘사되지도 않고, 신문이나 방송에서 주요 뉴스로 다루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분들의 삶은 끊임없이 자신을 포기하는 삶이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 자신을 위한 시간, 자기표현이나 성공을 위한 기회들을 기꺼이 양보하여 자녀들에게 행복의 양탄자를 깔아 주는 삶이었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이미 여러 이야기를 하였지만) 여러분이 날마다 하느님과 이웃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들을 더 자세하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제가 위대한 참회를 폄하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 길로 이끌어 주신다면, 오히려 그러한 참회는 매우 훌륭하고 거룩하며 필요하기까지 할 것입니다. 다만 언제나 여러분의 영적 지도자에게 허락을 받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교만의 결과인 타락의 심각성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참회를 하는 것이 적절하겠습니다. 다른 한편, 여러분이 계속해서 자그마한 것일지라도 내적 싸움에서 승리하여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를 열망한다면, 자신이 위대한 영웅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이나 교만이 스며들 여지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예컨대 웃고 싶지 않을 때에도 웃는 것입니다. 장담하건대, 웃음은 때때로 고행용 의복을 한 시간 동안 입고 있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우리는 사소한 것도 드릴 것이라고는 거의 없지만, 무엇이든 기쁘게 받아주시는 아버지를 둔 어린아이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극기 고행을 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다만 거기에는 사랑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2코린 4,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