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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친구들»에는 하느님의 현존를 주제로 하는 5 항이 있음.

비록 우리가 많은 실패를 경험하였더라도,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성덕을 이루겠다는 불타는 열망, 강렬한 열정이 뿌리내리도록 합시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적 생활의 발전이 있을수록, 우리는 자신의 잘못을 더욱 분명하게 보게 됩니다. 은총은 마치 우리 안에서 돋보기처럼 작용합니다. 아주 작은 먼지나 거의 보이지도 않는 모래 알갱이도 무한히 크게 보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은총을 통해 영혼이 거룩한 감수성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극히 희미한 어둠에서도 양심은 고통스러워하며, 오직 지극히 맑으신 하느님 안에서만 기쁨을 얻게 됩니다. 이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바칩시다. “주님, 저는 참으로 성인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참으로 주님의 제자가 될 자격을 갖추고 무조건 주님을 따르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바로 이 순간 여러분의 마음에 새겨진 위대한 이상을 날마다 새롭게 확고히 하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오, 예수님, 당신의 사랑 안에서 결합되어 있는 우리들이 참으로 인내롭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 영혼에게 일깨워 주신 그 열망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가끔 자문해 보십시오. ‘도대체 나는 왜 이 땅에 살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여러분의 일상 과제를 사소한 데까지 완벽하고 성실하게 끝마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성인들의 모범을 뒤따릅시다. 그분들은 우리와 똑같이 살과 뼈를 지닌 사람들로서 실패도 하고 나약함도 있었지만,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을 이기고 통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꽃 한 송이 한 송이에서 꿀을 모으는 벌들처럼, 성인들의 삶을 연구하고 그분들의 투쟁에서 하나하나 배우도록 합시다. 여러분과 저는 또한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수많은 덕행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그들의 고생과 자아 포기, 또 그들의 기쁨을 보면서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점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형제적인 충고가 필요할 때에,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에만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처럼 저도 고깃배와 그물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복음 장면들에서 명확하고 확고한 결심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루카 성인은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그물을 씻고 있던 어부들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배들이 있는 쪽으로 오시어 시몬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의 배에 오르시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여러분은 삶을 복잡하게 하려고, 다른 사람들의 불평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복잡하게 하시려 정답고 사랑스럽게 우리가 가는 길에 끼어드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배에서 군중을 가르치신 다음,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4). 어부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였으며, 그 결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그러하였듯이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던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루카 5,10-11).

여러분의 배, 곧 여러분의 재능, 희망, 업적은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그리스도께서 자유롭게 오르시도록 해 드리지 않는다면, 또 그분의 손 안에 놓여 있지 않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배를 우상으로 섬기고 있지 않은지 확인해 보십시오. 만일 여러분의 배에 그리스도께서 안 계시고 여러분 혼자 있다면, 여러분은 곧바로 난파의 위험에 떨어질 것입니다. 오직 주님께서 선장으로 계실 때에만, 여러분의 삶은 폭풍우와 암초에서 안전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손 안에 두십시오. 여러분의 생각, 여러분이 상상했던 용맹한 모험, 커다란 인간적 야망, 고상한 사랑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통해서 지나가게 하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은 조만간 여러분의 이기심과 더불어 저 바닥으로 가라앉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배를 하느님께서 지휘하시는 데 동의한다면, 만일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주인이 되시는 데 동의한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안전하겠습니까? 그분께서 가 버리신 것처럼 보여도, 그분께서 주무시는 것처럼 보여도, 그분께서 무관심하신 것처럼 보여도, 비록 폭풍이 일고 주위가 온통 칠흑같이 어두워져도 여러분은 안전합니다. 마르코 성인은 그러한 상황에 놓인 사도들과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마르 6,48, 50-51).

친애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수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 저는 여러분에게 많은 영혼들의 슬픔, 고통, 학대, 글자 그대로의 순교, 영웅적 행위들에 관하여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 주님께서 잠들어 계시고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루카 성인은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을 어떻게 돌보시는지 보여 줍니다. “그들이 배를 저어 갈 때에 예수님께서는 잠이 드셨다. 그때에 돌풍이 호수로 내리 몰아치면서 물이 차 들어와 그들이 위태롭게 되었다. 제자들이 다가가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곧 잠잠해지며 고요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의 믿음은 어디에 있느냐?’ 하셨다”(루카 8,23-25).

만일 우리가 주님께 우리 자신을 드린다면, 그분도 우리에게 자신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조금도 거리낌 없이 그분 손에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행동으로 주님께서 배의 주인이심을,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 뜻대로 하시기를 바란다는 것을 보여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성모님께 전구를 간청하면서, 이러한 결심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믿음으로 삽시다. 희망으로 견딥시다. 예수님께 아주 가까이 붙어 있읍시다. 참으로, 참으로, 참으로 그분을 사랑합시다. 열심히 살고, 사랑의 모험을 즐깁시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랑 안에, 하느님과의 사랑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초라한 배에 오르시어, 주님이요 스승으로서 우리 영혼을 소유하시도록 합시다. 우리를 믿음의 생활로 불러 주신 주님과 언제나 밤낮으로 함께 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성실하게 보여 드리도록 합시다. “저를 부르셨기에, 저 여기 있습니다”(1사무 3,9). 우리는 착한 목자이신 그분의 목소리, 그분의 부르심에 이끌려, 오직 그분의 울타리 안에서만 이제와 영원히 참된 행복을 발견하리라 확신하며 그곳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희망의 덕은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섭리로 우리를 다스리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온갖 것을 베풀어 주신다고 확신시켜 줍니다. 희망 덕분에 우리는 여러분과 저를 비롯한 인류에게 품으신 주님의 한결같은 선의를 깨닫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말을 들으시는 데 지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기쁨, 성공, 사랑 그리고 걱정, 고통, 실패에도 관심이 있으십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약할 때에만 그분께 희망을 두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부르면서 그분의 자애로운 보호에 몸을 맡기십시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확신은 (이러한 진리를 인정하는 데에는 그렇게 큰 겸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결국 강력한 힘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아닌 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힘이 되시어 그들을 드높은 존재로 바꾸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시편 27,1)

모든 일의 뒤에 하느님께서 계시고 그분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시고 바라보시며, 세상에서 우리에게 맡기신 자리를 지키면서 충실하게 주님을 따르라고 분명하게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늘 명심하십시오. 늘 주님과 동행하려면, 깨어 사랑을 실천하고 어려움들에 부딪혔을 때에도 성실하고 단호하게 싸워 극복해야 합니다.

저는 지금 그리스도인의 특별한 생활 방식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어떤 일을 해 주셨는지, 우리에게 어떻게 응답해 주셨는지 묵상합시다. 만일 우리가 용기 있게 자신의 행동을 성찰한다면, 여전히 더 해야 할 일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어제 저는 어떤 일본인 예비 신자가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우리는 더 큰 믿음, 훨씬 더 큰 믿음을 지닐 필요가 있으며, 믿음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혼을 동요시키는 동시에 꿀처럼 달콤한 주님의 말씀에 조용히 마음을 여십시오. “내가 너를 구원하였고,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 43,1). 하느님의 것을 훔쳐서는 안 됩니다. 그분은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고, 세상 창조 이전에 영원으로부터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해 주셨으며(에페 1,4 참조), 끊임없이 우리 삶을 정화하여 우리 자신을 당신께 봉헌한 기회를 주십니다.

만일 우리 마음 안에 지극히 작은 의심이라도 여전히 남아 있다면, 예수님의 입에서 직접 나오는 또 다른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6).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 초자연적 믿음입니다. 믿음이 약해지면, 하느님께서 멀리 계시고 당신 자녀를 거의 돌보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종교를 마치 다른 치료법이 없을 때 의존하는 어떤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처구니없게도 화려하고 비상한 볼거리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살아있는 믿음을 지닌 영혼은,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하여 일상생활의 평범한 방식을 바꿀 필요가 없으며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위대한 성덕은 여기에서 지금 매일매일의 사소한 일들 안에서 발견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