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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하느님의 친구들»에 생생한 표양 → 스테이플 항이 있음.

여러분은 가정에서 귀중한 장식품을 어떻게 다루십니까? 예컨대, 꽃병이 깨지지 않도록 얼마나 애지중지합니까? 그러다가 어느 날 아기가 꽃병 근처에서 놀다가 건드려 깨뜨리면 어떻게 합니까? 온 가족이 당황하겠지만, 곧바로 조각을 모으기 시작할 것입니다. 조각을 맞추고 접착제를 발라 마침내 이전의 아름다움을 회복할 것입니다. 깨진 것이 한 조각이라면, 고정용 금속 핀 등으로 간단히 붙일 수 있고, 그렇게 수선한 그릇은 본래의 매력을 유지합니다.

이러한 경우를 우리 자신의 내적 생활에 적용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자신의 나약함과 죄악과 실수들을 직시하게 되었을 때,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느님 아버지께 우리 자신을 맡기며 이렇게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 제가 깨진 질그릇처럼 비참한 모습으로 여기 왔습니다. 주님, 저의 부서진 조각들을 다시 붙여 주시고, 슬퍼하는 제가 당신의 용서로써 더욱 힘을 얻고 이전보다 더욱 멋진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 기도입니까! 우리의 나약한 질그릇이 깨질 때마다 이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부서지기 쉬운 우리 자신의 모습에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선한 행동을 하다가도 지극히 사소한 이유로 너무나 쉽게 포기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지 마십시오. 언제나 곁에서 도와주시는 주님께 맡기십시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시편 27,1) 우리는 아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다가가기만 한다면,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거짓되고 불의한 자에게서 저를 구하소서”(시편 43,1: 성주간 화요일 미사 화답송). 다시 한 번 ‘참된 하느님다움’에 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하느님다움’이 있다면, 우리 눈은 우리가 하찮은 진흙으로 만들어졌음과 우리 안의 모든 악한 성향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하느님께 간청할 것입니다. “당신의 빛과 당신의 진실을 보내소서. 그들이 저를 인도하게 하소서. 그들이 저를 당신의 거룩한 산으로 데려가게 하소서”(시편 43,3: 성주간 화요일 미사 화답송). 저는 이 화답송을 바치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음을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참된 하느님다움’을 갖추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겠습니까?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유다에서는 돌아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요한 7,1). 그분은 단순히 바라기만 하면 적들을 없애실 수 있으셨지만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시기도 했습니다. 하느님으로서 단순히 바라기만 하면 상황을 바꿀 수 있으신 그분께서는 여기서 놀라운 가르침을 남기셨습니다. 유다 지방으로 가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이곳을 떠나 유다로 가서, 하시는 일들을 제자들도 보게 하십시오’”(요한 7,3). 그들은 그분에게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도록 부추겼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입니까? 이것이 ‘참된 하느님다움’과 ‘거짓 하느님다움’에 관한 가르침인 것이 보입니까?

‘참된 하느님다움.’ 성주간 화요일 미사에 이런 기도문이 있습니다. “당신 이름을 아는 이들이 당신을 신뢰하니, 주님, 당신을 찾는 이들을 아니 버리시기 때문입니다”(시편 9,11). 이제 부서진 조각들이 다시 붙어 아름다워진 질그릇들이 겸손한 기도를 기쁘게 바칩니다. “가련한 이들의 울부짖음을 아니 잊으십니다”(시편 9,13).

겸손의 덕이 우리의 기를 꺾는다고 생각하거나 겸손의 덕을 멸시하는 사람은 절대 믿지 마십시오. 우리가 진흙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그리고 깨졌다가 다시 본모습을 회복하게 된 그릇임을 아는 것은 끊임없는 기쁨의 원천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눈에 우리가 작다는 것, 우리가 작은 어린이요 자녀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이 가난하고 나약하다는 것을 알고, 또한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도 아는 사람보다 더 기쁜 사람이 있을까요? 우리가 낙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세상의 삶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여러 장애물들이 우리의 개인적 야망을 가로막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초자연적 삶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로마 8,31) 거듭 강조하듯이, 하느님의 자녀임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불쌍합니다.

끝으로, 성주간 화요일 미사의 두 가지 청원, 우리의 입술과 마음에서 화살처럼 튕겨 나오는 기도를 다음과 같이 바칩시다. “오 전능하신 하느님, 이 거룩한 신비를 끊임없이 경축하는 저희가 하늘의 선물을 받기에 합당한 자 되게 하소서”(영성체 후 기도). “오 주님, 저희가 주님 뜻에 따라 끊임없이 봉사하게 하소서”(보편 지향 기도). 자녀 여러분, 봉사야말로 우리의 역할입니다. “저희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 이 시대에 믿는 이들이 공로를 쌓고 믿는 이들의 수가 더욱 많아지게 하여 주소서”(보편 지향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