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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느님의 친구들»에 교회 → 그리스도인의 사도직 항이 있음.

내적 생활, 우리는 이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주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건네시는 부르심에 응답하고 싶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듯이 ‘수염의 마지막까지(모든 면에서)’ 참으로 순수한, 시성될 수 있는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는 한 분이시고 유일하신 스승님의 제자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선택해 세우시고 은총을 베푸시는 것은 일상의 세계에서 성덕을 위하여 투쟁하라는 뜻이며, 또한 사도직을 수행할 의무를 내리시는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시각에서 보더라도, 하느님께서 우리는 선택하셨다는 사실에서 당연히 다른 영혼들에 대한 관심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 교부들 가운데 한 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무언가 여러분에게 유익한 것을 발견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에 관하여 말하고 싶어 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따라 주님의 길을 가기를 원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집회나 목욕탕에 가다가 시간 여유가 있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에게 함께 가자고 초대합니다. 이 인간적 행위를 영적 영역에도 적용하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을 향하여 갈 때에, 혼자서 가지 마십시오.”

만일 쓸모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면, 또는 상황의 어려움에 관한 변명을 늘어놓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면, ―왜냐하면 그리스도교가 시작된 이래로 지금까지 언제나 어려움이 있었으므로―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동료 이웃을 끌어들이는 것의 성공 여부는 대개 우리 자신이 어떤 내적 생활을 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성인이 되어야만, (그러나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실제로 성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충실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우리의 사도적 노력이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믿기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하느님과 동료 이웃들은 모두 우리에게 변함없는 충실성을 요구합니다. 말 그대로 진정한 충실성, 미봉책이나 타협이 아닌 자세한 부분까지 한결같은 충실성,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기쁘게 실천하는 완전한 충실성을 요구합니다.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요한 21,8). 그들은 그물을 끌고 오자마자 주님 발아래 놓았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영혼들은 하느님께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영혼들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구원을 선포하고 전달하는 교회의 사도직은 어떠한 인간의 특권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번의 배반에 대한 참회의 기회를 세 번 주시는 듯이, 세 번 물으십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비참한 경험을 통하여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나약함을 인식하고는, 경솔하게 큰소리를 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 대신에 그리스도의 손에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요한 21,15-17). 그리스도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5-17). ‘베드로야, 너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다!’ 그분께서 창조하셨고,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주님께서는 당신 피의 값으로 각각의 영혼을 모두 사셨습니다.

5세기에 도나투스파는 가톨릭 신자들을 조직적으로 공격할 때, 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노는 예전에 큰 죄인이었으므로 진리를 선언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신앙의 형제들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라고 제안하였습니다. “아우구스티노는 가톨릭 교회의 주교입니다. 그는 자신의 짐을 짊어지고 있으며, 그것에 대하여 하느님께 설명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나는 좋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를 만났습니다. 만일 그가 나쁜 사람이라면, 그는 그것을 알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좋은 사람일지라도, 내가 그 사람을 신뢰하는 이유는 그 사람 안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가톨릭 교회에서 배운 첫 번째는 어떠한 사람에게도 희망을 두지 말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도직을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직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것을 바라시고, 우리에게 명령하시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잘못은 우리의 것이고, 열매는 주님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