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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길»에 관대함 → 하느님께 관대함 항이 있음.

자신의 껍데기, 자신의 상아탑… 속에 움츠러든 이기주의자들의 제한되고 애처로운 행복을 이 세상에서 얻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기주의자들의 그런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 만화같은 천국의 모습을 얻기 위해 그대는 끝없는 영광의 기쁨을 잃어버리겠단 말입니까?

그대는 계산적입니다. 그러니 젊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젊은이는 모든 것을 바칩니다. 따지지 않고 청춘 그 자체를 바칩니다.

“제가 쉬운 것만 찾지 않도록 기도해주십시오”라고 그대는 말합니다. 나는 벌써 기도했습니다. 이제 그 멋진 결심을 성취하는 일은 그대에게 달렸습니다.

예수님은 ‘나누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십니다. 그분은 전부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자신 전부를 바쳐야하고, 완전히 금욕해야 합니다. 우리의 희생은 반드시 전번제全燔祭가 돼야합니다.

자신의 나약함과 옹졸함 때문에 스스로에게 벌을 주겠다고요? 좋습니다. 그런데 그대의 적인 동시에 형제에게 가하는 것과 같은 공정한 보속이라야 합니다.

그대의 영적생활에서 그대를 게으르고 안일하게 만드는 느슨함과 싸우십시오. 그것이 미지근함의 시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서에서, 하느님께서는 미지근한 자들을 뱉어버리겠다고 하십니다.

그대는 너무 순진합니다. “진정으로 애덕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입니다! 애덕을 실천하는 것은 낡은 옷가지나, 혹은 동전 몇닢을 내놓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면서 그대는 내게 슬픔과 환멸을 느꼈던 이야기를 해줍니다. 

한가지 생각이 떠오를 뿐입니다. 그대와 내가, 아낌없이 주고 또 우리 자신을 내놓읍시다. 그러면 우리를 접하는 사람들이 그대처럼 그런 슬픈 체험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악순환에 빠지지 마십시오. 그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만일 이일이 이렇게 또는 저렇게 해결된다면, 나는 하느님께 대단히 잘해드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대가 조건없이 관대해지기를 기다리시어 그일들을 그대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잘 해결해주시지 않을까요? 

논리적인 귀결로, 이 점을 확고히 결심하십시오. “매일 매순간 나는 하느님의 뜻을 충분히 실천하려고 노력하겠다”

금빛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도록 하겠다며 마구 뿌리는 것만큼 미친 짓이 있을까요? 그러나 그 관대한 미친 짓이 없으면 추수할 것 또한 없을 것입니다. 

나의 자녀여, 우리의 관대함은 어떻게 돼갑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