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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고랑»에는 정교분리주의를 주제로 하는 12 항이 있음.

좋은 가톨릭 신자인 것과 충실한 사회를 섬기는 것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와 국가가 하느님이 부여한 소명을 완수함에 있어 각각의 권위를 정당하게 행사해도 양자가 충돌할 리 없습니다.

이와 반대를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 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야 말로 거짓 자유를 빌미로 ‘친절하게도’, 가톨릭 신자는 카타콤(지하무덤)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속적인 사람들은 영혼들이 최대한 빨리 하느님을 잃고 이어서 이 세상을 잃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세계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짓밟고 이 세상을 착취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 이중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대가 피해야 할 근본적인 실수를 하나 알려주겠습니다. 즉, 당신이 사는 시대나 환경의-존귀하고 정당한-습관과 요청을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성스러운 도덕에 맞추도록 인도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가 ‘존귀하고 정당한’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다른 것과 분명히 구별한 점에 주목해 주었으면 한합니다. 고귀하지도 정당하지도 않은 일에는 시민권이 없는, 즉 시민이 받아들일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일상의 행동에 있어서도 생각에 있어서도 삶과 종교를 떼어내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가 교활한 박해를 받아 공공장소에서 추방당하는 것은 물론 특히 교육 문화 가족생활에 개입하는 것이 방해될 때 수수방관할 일은 아닙니다.

이것들은 우리의 권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권리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 가톨릭 신자들에게 그 권리를 맡기셨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행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물건이나 기술, 경제, 사회, 정치, 문화 등과 관련된 일을 각 분야의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거나 신앙의 빛이 없는 사람에게 맡기면 초자연적 삶에 큰 장애가 됩니다. 교회에 적의를 나타내, 교회의 출입을 인정하지 않는 분야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연구자, 문학자, 과학자, 정치가, 노동자인 당신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것들을 모두 성화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말씀한 것 같이 전 우주는 하느님 자녀들의 해방을 기다리면서 노동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아주 오래 전에, 아주 분명하게 깨달은 것이지만, 이것은 언제라도 유효한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그리스도교 신앙과 도덕에서 벗어난 사회에서는 복음서의 영원한 진리를 새로운 방법으로 실행하고 전파해야 한다는 것. 하느님의 자녀들은 사회와 세계의 한복판에서 스스로 덕을 실행하고 그로 인해 어두운 곳에 빛나는 불빛처럼 세상의 어둠을 비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까지,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좋은 가톨릭 신자여서 가톨릭신자를 두려워하고 반대하는 일이 무척 빈번하다는 것은 뚜렷한 사실입니다.

뜬소문과 풍자를 퍼뜨리는 자들에 대해 방비하십시오. 어떤 자들은 반성의 결여로 말려들고 그밖에는 나쁜 믿음을 통해 그렇게 됩니다. 그들은 조용한 분위기를 파괴하고 대중의 의견에 해독을 끼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진짜 애덕 때문에 그런 남을 짓밟는 행위와 그 장려자를 고발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그 사람들과 그들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자신들의 일그러진 양심과 미숙한 양심대로, "침묵은 동의의 표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 세기가 지나가는데도 가톨릭 신앙은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아있기 때문에 분파주의자들은 ‘광신(狂信)’이라고 부르고 아우성칩니다.

한편, 분파주의자들의 광신은 진리와는 관계가 없으므로 시대를 달리할 때는 그 겉옷을 바꿉니다. 그들은 사실에 바탕을 둔 내용이 결핍되어 있는 단순한 말뿐인 요괴를 성교회에 대항하여 쳐듭니다. 그들의 “자유”는 사람들을 속박하고, 그들의 “진보”는 인간성을 정글 속으로 되돌아가게 하며, 그들의 “과학”은 무지를 감춥니다. 그들의 좌석 뒤에는 단지 해묵은 망가진 물건들이 감춰져 있을 뿐입니다.

그대의 믿음을 위한 ‘광신(狂信)’이 매일같이 강해지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인 진리를 위한 유일무이한 방어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도록 하십시오. 교양을 과시하고 싶기 때문, 자신의 무지라는 무기를 휘두르다 바보가 없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증오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봉사자로 자처하는 자들과 손에 손을 잡고 행진하는 일을 알게 되는 것은 몹시 슬픕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감정을 따라가기는 하지마는 하느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항해서 결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