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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밭고랑»에 수덕 투쟁 → 기쁨의 원천 항이 있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정말 너무나 쉽습니다: “저는 쓸모가 없고 나에게는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제대로 되는 게 없다.” 진실되지 않다는 것을 떠나서, 이러한 비관주의는 엄청난 게으름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대가 잘하는 일도 있고, 그대가 잘못하는 일도 있습니다. 전자에 의지해서 당신 자신을 기쁨과 희망으로 채우십시오. 그리고 일들이 제대로 되게 하기 위해서 —낙심하는 일 없이— 후자와 대결하십시오. 그러면 일들이 잘되어 나갈 것입니다.

의욕이나 열의 부족이 검은 구름덩어리가 되어 덮쳐 왔습니다. 완전히 얽매여 있는 듯한 느낌과 함께 슬픔이 소나기처럼 쏟아졌습니다. 그대는 포위 되었다는 강한 충동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압도하여 낙담이 파고들어 옵니다. 그것은 객관적인 사실, 즉 오랜 세월 싸워 왔는데… 아직도 아주멀리 뒤떨어져 있다는 현실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느님은 그런 상태를 계산에 넣어 오십니다. ‘기쁨과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진정한 평화와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를 낙관적으로 만들어주는 하느님과의 부자관계를 확신할 뿐 아니라 스스로의 약함을 인정할 필요도 있는 것입니다.

그대는 유혹에 빠져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고 눈과 상상을 희롱하며 바보같은 수다를 떱니다. 그런 뒤 의심과 소심, 당혹, 슬픔, 낙담에 사로잡혀 놀랍니다.

일관된 태도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평화도 전쟁도 우리 안에 있습니다.

충성심, 게다가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려는 결의가 없다면 승리도 평화도 손에 넣을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