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 목록

3«하느님의 친구들»에 초자연적인 생활 → 영웅주의와 삶의 일관성 항이 있음.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기는 하지만, 결코 잊지 못할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발렌시아에 있는 주교좌성당에 기도하러 가서 가경자 요한 리다우라의 무덤 옆을 지날 때였습니다. 제가 듣기로, 이 사제는 이미 여러 해 전에, 얼마나 오래 사셨냐는 질문을 받고 아주 자신 있게 발렌시아 사투리로 “아주 조금입니다. 내가 하느님을 섬기는 데 쓴 시간은 아주 조금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여기 있는 많은 분들에게, 세상 한가운데서 자신의 환경에서, 자신의 직업과 업무에서 주님을 가까이 따르고 섬기기로 결심한 해를 헤아리는 데 한쪽 손의 다섯 손가락도 여전히 충분하지는 않은가요? 얼마나 오래 사는가는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주님의 초대를 영혼에 깊이 새기고 그 확신을 불태우는 것입니다. 주님의 초대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거룩함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적 생활을 바르게 연마하여 그리스도인 덕목들을 날마다 실행에 옮기려고 노력할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의무를 간신히 이행하거나, 평균적으로 이행해서는 안 됩니다. 심지어, 상대적으로 뛰어난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 그대로 가장 엄격하고 정확한 의미에서, 영웅적 실천을 목표로 싸워야 합니다.

내적 생활, 우리는 이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주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건네시는 부르심에 응답하고 싶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듯이 ‘수염의 마지막까지(모든 면에서)’ 참으로 순수한, 시성될 수 있는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는 한 분이시고 유일하신 스승님의 제자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선택해 세우시고 은총을 베푸시는 것은 일상의 세계에서 성덕을 위하여 투쟁하라는 뜻이며, 또한 사도직을 수행할 의무를 내리시는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시각에서 보더라도, 하느님께서 우리는 선택하셨다는 사실에서 당연히 다른 영혼들에 대한 관심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 교부들 가운데 한 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무언가 여러분에게 유익한 것을 발견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에 관하여 말하고 싶어 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따라 주님의 길을 가기를 원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집회나 목욕탕에 가다가 시간 여유가 있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에게 함께 가자고 초대합니다. 이 인간적 행위를 영적 영역에도 적용하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을 향하여 갈 때에, 혼자서 가지 마십시오.”

만일 쓸모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면, 또는 상황의 어려움에 관한 변명을 늘어놓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면, ―왜냐하면 그리스도교가 시작된 이래로 지금까지 언제나 어려움이 있었으므로―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동료 이웃을 끌어들이는 것의 성공 여부는 대개 우리 자신이 어떤 내적 생활을 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성인이 되어야만, (그러나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실제로 성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충실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우리의 사도적 노력이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믿기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하느님과 동료 이웃들은 모두 우리에게 변함없는 충실성을 요구합니다. 말 그대로 진정한 충실성, 미봉책이나 타협이 아닌 자세한 부분까지 한결같은 충실성,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기쁘게 실천하는 완전한 충실성을 요구합니다.

어떤 가톨릭 신자는 저를 매우 슬프게 합니다. 그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가 되도록 세례로써 부르심을 받은 하느님의 자녀이지만, 오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에만 기도하는 종교심, 형식적인 신앙심으로 자신의 양심을 싸늘하게 합니다. 그는 의무 축일에는 대개 미사에 가지만, 자신의 위장을 꼼꼼히 챙기며 결코 식사를 거르지 않습니다. 그는 신앙 문제들에 타협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기보다는 콩 접시와 신앙을 맞바꿉니다. … 그러고는 무례하거나 가증스럽게도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데 힘입어 세상의 성공을 추구합니다. 안 됩니다! 단지 신자라는 꼬리표만 붙이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저는 여러분이 참되고 확고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려면, 알맞은 영적 음식을 찾는 일에 꾸준히 힘써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경험하였을 수도 있고, 또 제가 종종 여러분이 낙담하지 않도록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의 내적 생활은 날마다 거듭거듭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도 저도 알다시피, 내적 싸움은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인데(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면서 저도 제 영혼이 우리 주님과 함께 있어야 하는 필요성을 되새깁니다.), 여러분도 양심 성찰을 할 때에, 종종 작은 실패들이 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때때는 그러한 실패들이 아주 심각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도 부족하고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지도 못하고 희생정신과 자기 연마도 무척이나 미흡해 보일 것입니다. 이제 진실한 통회 행위로써 보속의 정신을 키우고자 하는 열망을 키우십시오. 그러나 마음의 평화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