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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밭고랑»에 충실함 → 교회에 충성 항이 있음.

교회를 섬기는 것은 자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인 것처럼 생각하고, 또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지만 수덕적으로나 법률적으로나 그런 생각에는 절대 찬성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술은 갖추었지만, 승진해서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서만 쓰는 사람을 보면 슬퍼집니다. 사실 그들이야말로 다른 사람의 정직하고 결백한 태도를 보고도 그것이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그렇게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더욱 그대는 인내하고 올바른 뜻을 지키며, 그대의 뜻을 사랑으로 이룰 수 있도록 반복하는 힘을 스승이신 주님께 부탁드려야 한다. : 주님, 제가 당신의 거룩하신 뜻을 사랑으로 수행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교회와 교황과 교황좌에 대한 충성심을 키워야 합니다. 게다가 항상 한층 더 깊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당신은 교회를 좀 더 사랑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흉물스럽게 만들려고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 희망은 커집니다. 당연합니다, 교회는 그대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교회와 사람들을 섬기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이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조만간 오히려 교회와 사람들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게 됩니다.

교회 구성원이 취하는 특정한 사적 혹은 공적인 태도를 그리스도 신비체의 태도로 여기는 듯한 잘못만은 피하기 바랍니다.

태도와 행동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사람들을 그런 잘못으로 이끄는 계기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대의 일관된 태도와 충성심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 것입니다.

전 모르겠습니다. 왜 그대는 도덕과 신앙을 얘기할 때 스스로를 자주 독립한 가톨릭 신자라고 말합니까.

도대체 누구로부터 독립해 있다는 말입니까. 그런 잘못된 독립은 그리스도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에 관한 일에서는 절대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합금을 만들었을 때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질 높은 쪽의 금속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의 가르침이라는 보물은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복음서가 말하듯이, 그대는 언제 어느 때, 소유자, 즉 하느님께 책임을 물을지도 모릅니다.

교회에 갈 뿐만 아니라 사람들 눈에는 신앙심이 깊어 보이고, 분명 진심으로 믿고 있는 가톨릭 신자겠지만, 어리석게도 교회의 적의 앞잡이를 메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라고 당신은 말했습니다. 나도 동감합니다.

에큐메니즘(교회일치운동)과 다양성, 민주주의 등 갖가지 이름을 마구 쓰다 보니 최악의 적, 즉 무지가 그들의 집에 잠입해 버린 것입니다.

비록 하나의 역설로 보여지기는 하지만, 자신들을 성교회의 자녀들로 부르는 자들이 크나큰 혼란을 심는 자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싸움에 지쳐있습니다. 신의를 저버린 분위기에 혐오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누구나 쓰러진 사람을 덮쳐 짓밟으니까 말입니다.

저는 그대가 왜 놀라는지 모르겠습니다. 똑같은 일이 그리스도 주님께도 일어났지마는, 주님께서는 바로 병자와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구해 주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물러나지 않으셨습니다.

블충실한 자들은 충실한 사람들이 비활동적인 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데 열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