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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밭고랑»에 수덕 투쟁 → 필요성과 목표 항이 있음.

그대는 신앙을 가졌지만 충분히 활동하지 않습니다. 신앙심이 있기는 하지만 그대는 성인(聖人)이 되기 위해 싸우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거룩한 파종(씨뿌림)에 앞장서는 행운을 얻은 사람이, 초자연적, 인간적인 기쁨을 맛보고 있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 도시 전체와 그 주변을 감동케 하는 유일한 자가 된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라고 크게 만족하고 자주 말하고 있었습니다.

더 많은 수단을 손에 넣을 때까지, 더 많은 사람이 올 때까지,라고 생각하고 기다리지 맙시다. 사람들은 오늘, 지금 그대를 필요로 하고 있으니까.

기도할 때는 담대해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은 비관적인 그대를 낙관적인 사람으로, 겁쟁이를 담대한 사람으로, 허약한 정신의 소유자에서 신앙인 즉, 사도로 바꿔놓으실 것입니다.

그대를 굴복시켰던 어려움, 답파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산맥으로 보이던 어려움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바람과 물에게 조용해지라고 명령하셨을 때처럼, 그 문제들은 기적적으로 해결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그대는 의심하고 있다니,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성령을 그토록 많이 돕지 마삽시오!”라고 내 친구 하나가 농담조로 말했으나 무척 겁에 질린 소리였습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아주 조금밖에 “주님을 돕지” 않는다고

많은 남녀가 그토록 소심하고 그토록 거짓된 신중함을 가진 것을 보면 꼭 한 번 그들에게 묻고 싶어집니다. 신앙과 신뢰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위한 것일 뿐, 실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그대는 자신이 꽤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내면을 보면 움츠러들게 되는데 위쪽을 보면 자신감이 생기고 활기가 생기고 밝아집니다.

걱정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잘 알게 된 것의 표시이며, 이것이야말로 소중한 점이지만, 하느님을 한층 더 잘 알아가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나쁜 건 당신입니다. 그런 독서, 그런 친구, 즉 그 길로 가면 절벽에서 떨어질 위험이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왜 그러한 것들이 그대의 발전에 도움이 되거나 인격을 원숙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겁니까.

비록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되고, 손이 닿는 곳에 있는 즐거움이 줄어들지라도 계획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십시오. 이제 책임 있는 사람에게 걸맞은 행동을 할 때가 되었습니다.

고의의 작은 죄를 피하려 하지 않는 다수의 남녀의 무자각함이, 심하게 주님을 괴롭힙니다.누구나 이런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보통입니다, 라고 생각하고 정당화하기 때문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예수님을 형에 처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그 군중도 대부분 다른 무리들처럼 처음엔 고함을 지르며 모두 올리브 동산으로 달려갔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하는 일에 휘말려 돌이킬 수 없었던 것인지,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습니다.

20세기가 지난 지금도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고 있지 않습니다.

조만간 자신의 연약한 비참함을 깨달을 테니 몇 가지 유혹에 대해 미리 경고해 두고 싶습니다. 악마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내비칠 것입니다. 즉, 하느님은 당신을 잊으셨다, 당신이 사도직에 불려간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세상의 괴로움과 죄의 무게는 사도로서의 당신의 힘을 초월했다라고.

즉시 그것들을 거부하십시오. 이 가운데 어느 것도 진실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대가 정말로 싸우고 있다면 그대는 양심의 성찰을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매일의 양심성찰을 신경써서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대하는 방법의 서투름을 깨달았을 때, ‘사랑’ 때문에 아픔을 느끼는지 어떤지 알아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초석’을 놓는 시공식으로 달려가도 그렇게 시작한 일이 끝까지 완성될지 여부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죄인들은 이것이 ’최후’, 이것으로 ‘끝’, 이라고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속입니다.

무엇인가를 “끊어버릴”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마지막”이라는 표현은 과거의 시기, 즉, 이미 지나가버린 일을 말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라는 걸요.

그대에게 권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힘내서 당신의 ‘첫회심’때로 돌아가보십시오. 그것은 비록 아이들같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의 시작과 아주 흡사합니다. 영적인 생활에 있어서는 그대는 완전한 신뢰감을 가지고, 성실하게 그리고 두려움 없이 당신 자신이 이끌려 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대는 머리와 마음에 있는 일을 숨기지 말고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그대가 그 방법을 쓰지 않고 어떻게 그 미지근함, 한심한 권태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대는 잘 싸우지 않습니다. 싸우기는 해도, 홧김에, 번거로움에 져서인지, 그대의 소소한 노력이 효과를 거두지 않기를 바라면서 싸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그대는 스스로에게 강하게 요구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요구받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대가 따르고 있는 것은 당신 자신의 뜻이지 하느님의 뜻은 아닙니다. 만약에 그대가 열심히 고치지 않는다면 그대는 행복해지지도 않고 지금 그대에게 결핍되어 있는 평화를 얻지도 못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당신 자신을 낮추고, 정말로 원해서 하도록 시도해 보십시오.

무슨 시간 낭비, 또 무슨 얄팍하고 인간적인 티가 나는 겁니까? 그게 효과를 내는 비결인 것처럼 모든 걸 전술로 돌려놓다니.

하느님의 ‘전술(戦術)’이란, 애덕(愛徳), 끝없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인 것을, 모두가 잊고 있습니다.

인간이 죄로 인해 하늘과 땅 사이에 벌어진 메울 수 없는 거리를 하느님은 사랑으로 메꾸어 주신 것입니다.

양심성찰을 할 때에는 야만적이라 할 만큼 정직해지십시오. 용기를 내십시오. 거울 속의 나를 보고 어디에 상처가 있는지, 제거해야 할 얼룩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가 결점인지를 찾는 것처럼.

‘악마’. 대문자로 쓸 만한 가치가 없으므로 소문자로 쓰지만, 그 악마의 교활함에 주의하라고 말해 두겠습니다. 악마는 보통의 상황을 이용하여 우리를 하느님의 길에서 조금만, 혹은 마음껏 벗어나게 하려고 합니다.

투쟁한다면, 진심으로 투쟁한다면, '흐름을 거슬러’ 걷지 않으면 안됩니다.’ 가끔, 피로에 사로잡혀 인간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위안이 없을 때가 있으니까, 놀라지 않도록 하십시오.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이 저에게 써 보낸 것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 편지는 순진하게도 은총은 본성을 없애 버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보존해 두었습니다. “신부님, 이제 이삼일이 되었습니다마는 엄청나게 나태해짐을 느껴 왔고 생활 계획을 실천하는 열성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 싫지만 억지로 하고 있습니다. 이 위기가 빨리 지나가길 빌어주십시오. 제가 길을 잃을까봐 몹시 괴롭습니다.”

사랑은 희생을 요구할 줄 몰랐나요? 스승 예수님의 말을 천천히 읽으십시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성경의 조금 더 앞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나는 너희를 고아들처럼 버려 두지 않겠다···” 그대에겐 괴로운 일이지만 주님께서 그런 무미건조한 상태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대가 주님을 더 사랑하게 되도록 하시고, 그대가 십자가로 공동 구속자가되도록 하시고, 그대가 주님을 만나뵙게 되도록 하십니다.

당신에겐 괴로운 일이지만 당신이 당신을 그런 무미건조한 상태에 놓이게 한 겁니다.당신이 좀더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만 신뢰를 두고, 십자가를 지고 구원의 협력자가 되어, 그대가 주님을 만나뵙게 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악마는 별로 현명하지 않은 것 같다"고 그대는 말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그토록이나 바보스러워질 수 있는지 저는 이해가 안갑니다. 그는 언제나 같은 속임수, 같은 거짓말을 씁니다···”

당신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더 어리석으니까, 언제까지나 그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지 않습니다. 악마는 그런 것을 모두 계산하고 유혹하는 겁니다.

어느 날 들은 바로는 큰 전쟁이 있을 때 항상 반복되는 기묘한 현상이 있다고 합니다. 병력과 장비의 우세 때문에 사전에 승리가 확실시된다 해도 막상 싸움이 벌어지면 약한 전선이 나타나 패전의 우려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럴 때는 위에서 단호한 명령이 내려와 약한 전선을 보강합니다.

당신과 저에 관하여 생각했습니다. 패배하지 않는 하느님과 함께라면 우리는 언제나 승리자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성인이 되기 위한 싸움에서 힘이 없다고 느끼면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실행에 옮기십시오. 도움을 받는 겁니다. 하느님께 실패란 없으니까.

당신은 성실하고 정직하게 마음을 열고 하느님의 현존을 유지하며 지도자와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멋진 것은 핑계나 발뺌에 대해 스스로 적절한 답을 찾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영적 지도를 사랑합시다.

그대는 행동의 근원을 밝혀내지 않기 때문에, 때때로 ‘문제’를 만들어 내고 맙니다.

단 하나 당신에게 필요한 것, 그것은 단연코 전투의 대상을 바꾸는 일입니다. 즉, 충실히의무를 다하고 영적지도에서 주어진 지시를성실히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대는 성인(聖人)이 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과거보다 더 강하고 절박하게 느꼈습니다. 안락함을 좋아하는 어떠한 징조라면 무엇이든 용감하게 버려야 한다고 확신하고 서슴없이 매일의 투쟁에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뒤늦게 기도 중에 주님께 말씀드리는 동안, 그대는 투쟁이 사랑의 동의어임을 이해하였습니다.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 싸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앞으로 다가올 전투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더 큰 사랑을 요구하였습니다.

‘복된 탓이여!’라고 교회는 부릅니다.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도움이 되었다면, 또 그대보다 못한 이웃을 더 잘 이해하고 돕기 위해 도움이 되었다면, 다시금 그대 귀에 속삭입니다. “다행이려나, 그대의 죄는.”

유혹을 거절한 뒤에 당신은 물었습니다. 주여, 제가… 그렇게 나쁜 인간일 수가 있을까요?

당신의 진료 ‘진료기록카드’를 요약하면, 여기에서 쓰러져 그곳에서 일어섰다, 라고 합니다. 이 두 번째가 중요한 겁니다. 비록 거북이 같은 걸음일지라도 당신은 내적인 싸움을 계속하십시오. 자, 전진입니다.

나의 자녀여, 싸우지 않으면 어디까지 떨어질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의 심연(深淵)은 또 다른 하나로 그리고 또 다른 하나로 이끌어 갑니다.

그대는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낡은 더러움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본능과 나쁜 쏠림은 매사에 민감하게 느껴져 마음에 불안의 구름이 드리워집니다. 게다가 원하지도 않고 예상치 못할 때, 피곤하고 의지가 휘청거릴 때에만 유혹이 엄습합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 견딜 수 없지만 내가 겸손한지는 모른다고 당신은 말합니다. 하지만 하느님 때문에 주님의 사랑 때문에 아픔을 느낀다면 그 사랑에서 우러난 통회 덕분에 경계심을 늦추지는 않을 겁니다.

싸움은 여생 동안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얼마 전에 행했던 자기 봉헌을 다시 한번 확인하려는 욕망으로 그대는 지쳤습니다. 그대는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임을 기억하면서 하느님의 자녀에 걸맞은 삶을 살겠다고 강력히 바라고 있습니다.

당신의 수많은 비참함과 불충실을 하느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그것이 짐을 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쇄신이란 완화되는 게 아닙니다.

피정은 하느님을 알고, 자신을 알고, 진보를 위한 잠심(潜心)의 시기입니다. 어느 점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고쳐야 하는지, 즉 무엇을 하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발견하기 위해 필요한 날들입니다.

지난해와 같은 일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피정은 어땠습니까”라고 그대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대는 “잘 쉬다 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침묵과 은혜가 넘치는 날들, 일대일로 하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날들입니다.

그들을 보고 감사의 기도가 뿜어져 나왔습니다.하느님이 마음의 문을 두드리면 나이와 경험으로 볼 때 중후한 사람들이 아직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살 수 있고, 또 길을 잃은 과거나 게으름을 지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열중하여 어린아이처럼 마음을 열고 화답한 것입니다.

저는 그 장면을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투쟁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당신에게 간청했습니다.

‘신자들의 도움’ 로레토의 복되신 동정마리아 호칭기도에서는 이렇게 자신있게 말합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 화살기도를 되풀이해본 적이 있습니까? 어린아이 같은 사랑과 믿음으로 외친다면 승리로 이끄는 성모님께서 전구해 주시는 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대의 거친 성격에 대항하여, 이기주의와 편안함을 찾는 정신과 혐오감에 대항하여 싸우십시오. 우리들은 공동 구속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밖에 그대가 받는 상은 그대가 해낸 씨뿌림과 아주 직접적인 관계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대는 당신 자신을 훌륭한 이론가같이 내놓습니다. 그러나 그대는 가장 무의미한 하찮은 일들에서까지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양보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대가 말하는 희생의 정신을 믿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