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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밭고랑»에 인간적 존경 → 사도직에서 항이 있음.

진리가 지켜지느냐 마느냐 하는 판에 하느님을 불쾌하게 해드리지 않기를 바라는 동시에 세상 사람들과도 충돌하지 않기를 바라는 듯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해서야 되겠습니까. 하느님과 세상은 대립관계입니다. 둘 중 하나를 택하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희생은 모든 것이 타버리는 전번제(全播祭)여야 합니다. '남들이 어떻게 말할까'라는 걱정, 그리고 평판까지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다 태워버려야 합니다.

‘거룩한 뻔뻔스러움’은 복음 속에 매우 깊은 근거를 갖고 있음을 이제야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하느님의 뜻을 수행하십시오. 다음 일들을 깊이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곧 예수께서는 거짓으로 고발당하셨고, 예수께서는 침뱉음을 당하시며 얻어맞으셨고, 예수께서는 보잘것 없는 모임들 앞에 끌려나가셨으나···, 예수께서는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결심: 모욕을 당하더라도 참고, 굴욕감이 뒤따르리라는 것을 각오하고, 우리 주님의 자비로운 사랑이 우리들에게 맡기기를 원한 하느님의 일로 서 참으십시오.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행세하는 것에 두려움과 부끄러움 느끼고 그것에 진다면,우리가 저지르는 해악이 얼마나 큰 것입니까. 생각만 하여도 무섭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하느님이나 사도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자기변명의 필요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인간적인 덕행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영적으로 굉장히 일그러졌고 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다 기쁘게 해 주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론(異論)을 제기하고, 불평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양에게 좋은 것은 늑대에게는 나쁘다.”

‘위협'을 입에 담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적 앞에서 겁을 먹는 사람들. 그대가 그런 태도를 취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대는 그 초자연적 사업에 뛰어들어 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지 못하거나 일을 잘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그대는 말합니다. 만약에 그대가 하느님에 관해서 더 생각한다면 그러한 핑계들은 없어질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