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 목록

10«밭고랑»에 인간적 존경 → 신앙의 실천에 대한 인간 존중 항이 있음.

혹자는 신앙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무분별, 무모하다고 칭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을 미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나 남을 신뢰하는 것이 더 미친 것 같아보입니다.

그대는 편지로 저에게 말하기를 마침내 고해소에 들어가서 굴욕을 참고 한 인간 앞에서 당신 생활의 배설 구멍 —그대의 말입니다— 을 열어야 하는 수모를 경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언제가 되면 그런 자만심을 버리겠습니까. 그 자만심만 버리면 기름 부어진, 다른 하나의 그리스도 —그리스도 자신一 이며 그대에게 하느님의 용서인 사죄의 말씀을 주는 “그 사람”에게 가서 고백하고 기쁨에 넘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용기를 내어 공공연히, 그리고 끊임없이 우리의 거룩한 신앙과 일치된 삶을 살고 싶습니다.

확실한 교회의 가르침에 대해 그 사람들은 공평을 가장하면서 말했습니다. 종파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진리 그 자체를 가진 사람은 종파주의자가 될 수 없다고 설명하자 그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유행을 기준으로 사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이걸 납득하고 싶으시면 옛날 초상화 몇 장을 보면 충분합니다.

그대가 하느님께 주님에 어울리는 경배를 드리기 위해 행렬의식 우리들의 거룩한 어머니인 교회의 모든 외부적인 전례들을 좋아하고···, 그리고 그대가 정말로 당신 자신을 그것들에 몰입시키는 것이 저는 기쁩니다!

“나는 온 세상에 드러내놓고 가르쳤다”라고 한 것이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 생명을 내어 주실 때가 왔을 때 가야파에게 하신 대답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우리 주님에 대해 —드러내놓은一 공경을 보이기를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사도들이 도망치고 성난 떼거리들이 예수님께 노기에 차 시끄럽게 소리칠 때 거룩한 동정 마리아께서는 예루살렘의 거리들을 지나며 자기 아드님의 뒤를 바싹 따라가셨습니다. 마리아께서는 군중이 소리 칠 때 물러서지도 않으셨고, 그 군중 속의 이름 모를 사람들 하나하나가 비겁한 가운데 그리스도를 사납게 다룰만큼 무례해졌을 때 우리 구세주를 혼자 있게 내버려두지도 않으셨습니다.

모든 힘을 다해서 ‘가장 성실하신 동정녀!’라고 부르십시오. 성모님을 부르며,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친구라고 부르는 우리들이 참으로 언제나 하느님의 벗으로 남을 수 있도록 청하십시오.

몇몇 선량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두려움, 하느님과 교회의 적이 그 두려움 의지해서 지내고 있다고 때때로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면 저는 너무 부끄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