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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밭고랑»에 일 → 사도직의 도구 항이 있음.

“이것은 너무 어렵다”라고 그대는 낙심해서 외칩니다.

들어보십시오, 만약에 그대가 하느님의 은혜로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당신 자신의 이해관계를 한쪽으로 미뤄두면, 그대는 하느님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게 될 것이고, 바로 오늘 전쟁이 치뤄지고 있는 싸움터에서 교회를 돕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거리에서, 공장에서, 작업장에서, 대학에서, 사무실에서, 당신 자신의 주변에서, 그대의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그들만의 작은 세계 안에다 자신들을 가둬두지 못합니다. 그러한 제한은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그들은 반드시 모든 영혼에 도달하기 위해 부채같이 펼쳐내야 합니다. 사람마다 다 친구들의 써클을 창출해야 하고 一 그리고 넓혀야 하고 —그 친구들에게 자기 직업상의 신망을 가지고, 자기 행위를 가지고, 자기 우정을 가지고 영향을 줄 수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그 직업상의 신망과 그 행위와 그 우정의 방편을 빌어 주님의 영향력을 행사하시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자신만의 환경에 틀어박힐 수 없습니다. 그런 지각 갇혀있다니 슬픈 일이 아닙니까? 스스로를 부채처럼 펴고 모든 다른 사람에게 가야 합니다. 사람마다 다 친구들의 사도적 모임(써클)을 창출해야 하고 一 그리고 넓혀야 하고 — 자신의 업무에서 좋은 평판이나 행동이나 우정으로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업무상의 좋은 평판이나 행실과 우정을 통해 영향을 미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가르치고' 싶고 ‘정성껏 가르치고’ 싶다면 학생은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그런 마음이야말로 사도직에 적합한 토양입니다.

그대가 저에게 그대의 사도직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써보내 왔을 때 저는 완벽하게 이해하였습니다. “저는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세 시간 동안 기도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충격이어서 도서관 책상 맞은쪽에 있는 다른 하나의 자리가 내려옵니다 —주님께서 이 근처에 오셨을 때 그대는 벌써 주님을 만났습니다.”

제가 기도와 일은 쉽게 병행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그대가 얼마나 좋아했었는지를 저는 기억합니다.

공부하는 것 일하는 것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면할 수 없는 의무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성교회의 원수들로부터 우리들 자신을 방어하는 방편이고, 그리고 우리들의 직업적인 명성을 가지고, 선하면서 고립되어 싸우는 대단히 많은 영혼들을 끌어당기는 방편입니다. 그것들은 누구이건 이 세상 한복판에서 사도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가장 기본되는 무기입니다.

당신도 계속 그대에게 박차를 가하는 직업적인 소명이 있습니다. 네, 그 박차가 사람들을 위한 고기 낚는 낚시입니다.

그대의 의도를 바로잡고, 그리고서는 잘 알아 두십시오, 그대는 하느님과 영혼들에 봉사를 위해 그대가 할 수 있는 모든 직업상의 명성을 획득하십시오.

성서의 말씀 “바보들의 수효는 끝이 없으며”, 그들은 매일 늘어가는 것같이 보입니다. 다양한 지위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직무 그 자체에 부수되는 겉치레의 평판이나, 끝내는 겉치레의 ‘덕(徳)’에 숨어 있지만, 얼마나 많은 잘못이 저질러져 양지에 부족한 행동이 행해지고 있는 것인가요.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참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당신이 삶의 초자연적 의의를 잃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인간적인 동기에서 그런 상태를 참는 것이라면 사실 참지 않을 수 없다지만 당신의 내적 상태는 참으로 저조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책임감 넘치는 일처리와 끝까지 일을 끝내는-곧 그 일을 성화하는 것-태도로 그런 사람들이 길을 발견하도록 도와주지 않으면 당신도 그들과 똑같은 어리석거나 공범자가 되고 맙니다.

그대가 저 그리스도를 위한 형제애적인 일의 이상을 이해하게 될 때 그대는 더 나아지고, 더 안심되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될 수 있는 한 행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퍽 많은 사람들이 자기네들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만을 따라감으로써 이 세상을 왜곡되고 모질게 만드는 데 열중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친구인 그 사제의 말에는 납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사제는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는데, 그때 소중하지 않은 일이란 없다고 보증했습니다. 이 뜰에 펼쳐진 장미꽃 뒤에 많은 사람들의 무언의 노력이 숨어 있습니다. 그들의 일과 기도, 기도와 일이 모든 것을 풍요롭게 하는 은혜의 폭우를 내리게 한 덕분임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평소 하던 일을 앞두고 마음이 흔들릴 것 같으면 다시 한번 다음의 생각을 환기시켜야 합니다. “일, 즉 공부는 나의 길의 불가결한 부분이다. 만약에 내가 내 게으름의 결과로 직업적으로 불신을 초래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일을 쓸모없거나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그들을 돕고 하기 위해서는, 저는 직업적인 명성의 영향이 필요하고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이기도 하다.”

그대가 그대의 일드을 포기한다면, 그대는 하느님의 계획들에서 떠나가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하느님 의 계획에서 벗어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결단코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 충고는 그대를 위한 것이니, 그것은 그대가 아직 젊고 그리고 방금 그대의 길을 따라 출발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에든 참여하시므로, 그대가 후에 그대의 생각을 더 효율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게 되도록 직업적으로 뛰어나도록 해보십시오.

그대는 다음의 일이 모두 그대에게 의존하고 있는 듯이 행동해야 하니 곧, 당신 일터에서의 분위기는 힘드는 일, 명랑성, 하느님의 현존 및 초자연적 외모 가운데 하나안가의 여부를 말입니다.

왜 그대는 그토록 무관심합니까? 만약에 그대가 약간 어려운 활동 중인 한 모임을 만난다면, 그대는 그들에 대해 흥미를 잃습니다. 아마도 그대가 그들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그들이 어렵게 되었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대는 패배를 인정하고 그들이 그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을 그대의 사도직의 이상을 끌어내리는 무거운 짐같이 생각합니다.

그대는 그대의 기도와 고된 수행(修行)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봉사할 것이겠지만, 그대가 그들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대가 그들에게 당신 말을 듣기를 기대하겠습니까?

그대는 그대가 그들에게 하나씩 차례로 말해 주기로 결정하는 날, 간직되어 있는 많은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거기다 만약에 그대가 바뀌지 않는다면 그들은 어느날에 가서는 그대를 손가락질하고 이렇게 아주 옳게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일하는 분위기, 즉 근면함, 기쁨, 하느님의 현존함, 초자연적인 시각이 넘치는 분위기 조성이 오직 한 사람 당신만을 위해 달려 있다는 생각으로 행동하십시오.

전 당신의 냉담과 무관심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내버려 둬서 그랬을 수도 있는데, 좀 다루기 어려운 동료 그룹과 마주쳤을 때, 당신은 모른 척 하면서 위험을 피합니다. 그들을 사도직의 꿈을 방해하고 당신을 이해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입니다.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기도와 희생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섬긴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그들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으니까.

한 사람, 또 한 사람, 또 한 사람을 일대일로 대할 결심을 했다면 그 결과를 보고 크게 놀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신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그들이 당신을 가리키며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해도 당연한 것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