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 목록

5«하느님의 친구들»에 일상 생활 → 거룩함과 작은 것 항이 있음.

물론, 우리의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고 저 높은 데에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거룩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님을 잊지 맙시다. 거룩함은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응답이 서로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저술가 가운데 한 분은 하느님과의 일치에 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자라는 모든 것은 작게 시작합니다. 그것이 점차 크게 자라는 것은 꾸준히 계속해서 영양분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만일 철저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면, 비록 여러분이 종종 자기 자신을 극복하거나 나약한 몸으로 저 높은 곳에 계속 오르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주 세심한 부분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성덕은 여러분의 노동과 일상 의무를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행함으로써 얻을 수 있으며, 이것들은 거의 언제나 사소한 현실들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여러 해 동안 경험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알퐁스 도데의 「타라스콩의 타르타랭」에 나오는 것처럼 헛되고 유치한 꿈을 계속 꿉니다. 자기 집의 복도에서 실제로는 쥐들밖에 만나지 못하는데도 사자 사냥을 상상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저는 여러분이 평범한 일상의 의무들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하느님과 동행하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일인지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벌이는 일상의 투쟁들은 우리 주님께 충만한 기쁨을 드립니다. 오직 우리 주님과 우리 각자만이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만히 휴식을 취하면 휘황찬란한 기회들에 현혹되는 일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실제로 그런 기회들은 거의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 여러분을 둘러싼 사소하고 평범한 일들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여러분의 사랑을 보여 드릴 기회는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로니모 성인께서 말씀하셨듯이, “사소한 일들에서도 영혼의 위대함이 똑같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창조주께서 하늘과 땅, 태양과 바다, 코끼리, 낙타, 말, 황소, 표범, 곰, 사자를 만드신 데 대해서도 흠숭을 드리지만, 또한 개미, 모기, 파리, 벌레 같은 작은 피조물, 모양은 알지만 이름조차 모르는 것들을 지으신 데 대해서도 같은 흠숭을 드립니다. 크건 작건 모든 피조물에 배인 창조주의 솜씨를 찬미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 봉헌된 사람은 거창한 일뿐 아니라 사소한 일에도 똑같이 열심입니다.”

비록 우리가 많은 실패를 경험하였더라도,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성덕을 이루겠다는 불타는 열망, 강렬한 열정이 뿌리내리도록 합시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적 생활의 발전이 있을수록, 우리는 자신의 잘못을 더욱 분명하게 보게 됩니다. 은총은 마치 우리 안에서 돋보기처럼 작용합니다. 아주 작은 먼지나 거의 보이지도 않는 모래 알갱이도 무한히 크게 보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은총을 통해 영혼이 거룩한 감수성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극히 희미한 어둠에서도 양심은 고통스러워하며, 오직 지극히 맑으신 하느님 안에서만 기쁨을 얻게 됩니다. 이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바칩시다. “주님, 저는 참으로 성인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참으로 주님의 제자가 될 자격을 갖추고 무조건 주님을 따르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바로 이 순간 여러분의 마음에 새겨진 위대한 이상을 날마다 새롭게 확고히 하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오, 예수님, 당신의 사랑 안에서 결합되어 있는 우리들이 참으로 인내롭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 영혼에게 일깨워 주신 그 열망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가끔 자문해 보십시오. ‘도대체 나는 왜 이 땅에 살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여러분의 일상 과제를 사소한 데까지 완벽하고 성실하게 끝마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성인들의 모범을 뒤따릅시다. 그분들은 우리와 똑같이 살과 뼈를 지닌 사람들로서 실패도 하고 나약함도 있었지만,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을 이기고 통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꽃 한 송이 한 송이에서 꿀을 모으는 벌들처럼, 성인들의 삶을 연구하고 그분들의 투쟁에서 하나하나 배우도록 합시다. 여러분과 저는 또한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수많은 덕행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그들의 고생과 자아 포기, 또 그들의 기쁨을 보면서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점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형제적인 충고가 필요할 때에,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에만 그렇게 해야 합니다.

시작하는 사람은 많지만, 끝마치는 사람은 적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우리는 ‘적은 사람’ 쪽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잘 끝마친 일만이 성경에 나오는 주님의 칭찬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일의 끝이 그 시작보다 낫다”(코헬 7,8).

여러분은 이미 다른 기회에 이러한 이야기를 저한테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그 주제를 다시 한 번 다루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매우 탁월한 가르침을 주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저는 로마 예식서에서 건물의 마지막 돌을 축복하는 기도문을 찾으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 인내롭게 건축을 한 사람들에게 그 돌은 열심히 일했다는 상징이므로 매우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러한 기도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다만 모든 경우의 축복(benedictio ad omnia) 기도문이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 기도문이 없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찾아보는 데 꽤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잊고 지내는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들에게 기대하시는 충만한 삶을 이루려면 일상적인 일들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아주 사소한 일이더라도 우리는 그 일들을 성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이 나약하고 한계가 있지만, 그러한 여건에서 최선의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위하여 하는 일은 흠이 없어야 하며, 아주 세심한 부분까지도 극히 주의 깊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부실하고 성의 없는 예물은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어떤 것이든 흠이 있는 것을 바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호의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레위 22,20).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 각자가 시간과 힘을 들여서 하는 모든 활동은 창조주 하느님께 맞갖은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위한 하느님의 일(operatio Dei)이어야 합니다. 요컨대, 완전하고 흠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게 너무 관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경향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이러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쉽게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 또는 휴식이 충분한지에 대해서 지나친 걱정을 합니다. 물론 휴식이 필요합니다. 날마다 새로운 활력으로 일과 씨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 해 전에 이야기했듯이, “휴식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노력이 덜 요구되는 다른 활동들에 우리의 주의를 돌리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우리 어깨 위에 놓인 놀라운 책임들에 대하여 너무 느긋하고 그것들을 망각하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단지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우리는 또한 그릇된 합리화 속으로 숨으며 시간을 낭비합니다. 반면에 사탄과 그의 졸개들은 결코 쉬지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예전에 노예였던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이야기를 묵상해 봅시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좋아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진심으로 실행하십시오.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기쁘게 섬기십시오”(에페 6,6-7).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주인에게 복종할 것을 촉구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마땅히 따라야 할 좋은 충고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님께 빛을 주십사고 청합시다. 우리의 직업이 우리 자신의 성화 소명에 필요하고 또 유익한 것이 되도록 하는 그 신성한 의미를 매 순간 발견할 수 있게 도와주십사고 간절히 청합시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마르 6,3)이라고 불립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거룩한 자부심을 지니고 참으로 일하는 사람임을 행동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의 특사로 행동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일을 마치지 못한다면, 만일 다른 사람들보다 직업적으로 덜 노력하고 덜 희생한다면, 만일 부주의하고 믿음직하지 않으며 경박하고 무계획적인 사람으로 불린다면, 우리는 그분을 충실히 섬기는 것이 아님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덜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의무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영성 생활과 관련된 다른 의무들도 성공적으로 이행하지 못할 것이며, 아마도 더 어려워할 것입니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루카 1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