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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하느님의 친구들»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 → 모범과 길 항이 있음.

이제 하늘에 계신 복되신 어머니께 우리를 당신 팔로 안아 주시고 아드님의 자비를 얻어 주시도록 기도할 때입니다. 그리고 몇 가지 실천 사항을 결심해 보십시오. 하느님과 여러분 자신이 아주 잘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발전을 가로막는 사소한 결점을, 비록 아픔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끊어버리십시오. 교만, 관능적 욕망, 그리고 초자연적 실재에 대한 불감증은 서로 힘을 모아 여러분에게 속삭일 것입니다. “그래? 하지만 그것은 얼마나 하찮고 대수롭지 않은 일인가!” 유혹에 속아 넘어가지 말고,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그래, 이번에도 나는 거룩한 부르심에 나를 맡길 거야.” 사랑은 특별히 작은 일에서 드러나므로, 여러분은 옳은 결심을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희생은, 비록 아무리 어려운 것일지라도, 대개는 아주 사소한 행위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심장 박동처럼 멈추지 않으며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귀중합니다.

위대하고 특별한 사건의 영웅들 가운데 어머니는 얼마나 많이 있었을까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저는 진정한 영웅인 어머니를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화려하게 묘사되지도 않고, 신문이나 방송에서 주요 뉴스로 다루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분들의 삶은 끊임없이 자신을 포기하는 삶이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 자신을 위한 시간, 자기표현이나 성공을 위한 기회들을 기꺼이 양보하여 자녀들에게 행복의 양탄자를 깔아 주는 삶이었습니다.

“내 안에서 가르침과 진리의 온갖 은총, 삶과 덕의 온갖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집회 24,19: 대중 라틴말 성경). 참으로 현명하게도 교회는 성모님을 통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을 잊지 않도록 배려합니다. 성모님은 우리가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곳이고, 결코 변하지 않는 사랑이며, 우리에게 언제나 열려 있는 피신처이고, 언제나 기꺼이 어루만져 주고 위로해 주는 손입니다.

초기 교회 교부들 가운데 한 분은 우리가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걸으신 삶을 명확하게 요약한 내용을 기억과 마음에 담아 간직해야 한다고 당부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의학, 수학 등의 과목에서 기초적인 실수를 피하기 위하여 신속하게 참고할 수 있는 즉석 해결 방법들이 수록된 참고서의 요점들을 자주 찾아보았을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지상 생애의 대부분을 보내셨던 시기, 성모님 곁에서 지내셨던 그 시기에 관하여 상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로서 성모님과 입을 맞추고 함께 노시며, 성모님의 돌봄을 받으시는 모습을 그리기를 좋아합니다. 성모님과 지상 양부이신 요셉 성인의 사랑스러운 눈길을 받으며 자라는 모습을 보기 좋아합니다.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참으로 세심한 배려로써 예수님을 대하시고 어린 시절 내내 돌보시며, 그분에게서 많은 것을 조용히 배우셨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분들의 영혼은 점점 더 인간이요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영혼을 닮아갔을 것입니다. 그 덕분에 성모님, 그다음에 요셉 성인은 어느 누구보다도 그리스도의 성심을 더 잘 이해하십니다. 그러므로 두 분은 구세주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최선의 길, 유일한 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마리아의 영혼이 여러분 각자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우리 주님을 찬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의 정신이 여러분 각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기를 바랍니다.” 이 교부의 이어지는 말씀이 처음에는 과감해 보이지만, 그리스도인 생활에 분명히 영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육으로는 그리스도에게 어머니 한 분이 계실 뿐이지만, 믿음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의 열매이십니다.”

만일 우리가 성모님과 동화되고 그분의 성덕을 본받는다면, 우리도 은총에 힘입어 많은 영혼들에게 그리스도를 낳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영혼들도 성령의 활동으로 그리스도와 동화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모님을 본받는다면, 어떤 면에서는 그분의 영적 모성에도 참여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성모님에게서처럼 침묵 가운데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거의 아무런 말도 없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참되고 진실한 삶을 보여 줌으로써, 그리고 우리 자신과 하느님 사이의 내밀한 유대의 표현으로 새롭게 성모님의 ‘피아트’(루카 1,38 참조: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를 끊임없이 기꺼이 되풀이하는 가운데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장애들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첫 결심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질 때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을까요? 이때 우리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녀의 모범에서 영감을 얻도록 합시다. 성모님은 우리에게 넓게 열린 길을, 반드시 예수님을 통과하는 길을 보여 주십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다면 올바른 길, 곧 그리스도의 거룩한 인성을 따라가야 합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주님의 수난에 관한 책들을 읽도록 늘 권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진정한 경건함이 가득한 그런 작품들에서 우리 마음은 하느님의 아드님, 우리 같은 인간이시며 또한 참 하느님이신 분, 육신을 취하시어 사랑을 보여 주시고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고통을 겪으신 분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깊이 뿌리 내린 신심들 가운데 하나인 거룩한 묵주기도를 바치십시오. 교회는 묵주기도의 신비를 묵상하도록 권장합니다. 성모님의 기쁨과 슬픔과 영광과 더불어, 우리 주님 생애의 놀라운 본보기, 곧 30년 동안의 조용한 삶, 3년 공생활 동안의 가르침, 치욕적인 수난과 영광스러운 부활을 우리 마음과 뇌리 속에 깊이 새겨 두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비결입니다. 그분께 더욱더 가까이 다가가, 첫 열두 제자처럼 그분과 함께 살아야 하고, 그분과 동화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은총의 길에 장애물을 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로마 13,14 참조). 그러면 마치 거울처럼 우리의 행동에서 우리 주님이 반사되어 보일 것입니다. 만일 거울이 정상이라면, 우리 구세주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 일그러지거나 우스꽝스럽게 보이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사람들이 그분을 공경하며 따를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관상의 길에 있다는 이유로 온갖 산란한 감정에서 완전히 벗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맙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찾으려는 열망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그리스도를 만나 알게 되고 그분 사랑의 달콤함을 즐긴다고 해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일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도 경험하였겠지만, 저도 이 진리를 상기시켜 주고 싶습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원수인 사탄은 포기하지도 않고 쉬지도 않습니다. 우리 영혼이 하느님과 열렬한 사랑에 빠졌을 때조차도, 사탄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때 영혼이 타락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을 악마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마는 또한, 만일 아주 사소한 일에서라도 영혼이 주님을 거스르게 할 수만 있다면, 사람의 양심에 절망을 안기는 결정적 유혹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느님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한 가엾은 사제의 경험에서 배우고 싶다면, 이런 말을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육신이 자신의 잃은 권리를 되찾으려고 노력하거나, 더욱이 교만이 고개를 세우고 반항할 때에, 여러분은 서둘러 십자가 위에서 못에 박히고 창에 찔린 그리스도의 몸에 난 거룩한 상처들로 피신하여야 합니다. 영이 움직이는 대로, 그분의 거룩한 상처 안에 여러분의 모든 인간적 신적 사랑을 내려놓으십시오. 주님과 일치를 추구한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제로서 그분의 피를 나누고, 우리를 예수님께 데려가신 성모님을 같은 어머니로 모시는 자녀임을 느낀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