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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하느님의 친구들»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 → 거룩한 정결 항이 있음.

우리는 모두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그와 관련된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싸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상기해 봅니다.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2코린 12,7).

하느님의 도움 없이 깨끗한 삶을 영위하는 것을 불가능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겸손하게 당신의 도움을 청하기를 바라십니다. 바로 이 순간에 여러분은 마음에 홀로 성모님을 모시고 그분께 조그마한 소리로, 그러나 확신을 가지고 간청해야 합니다. ‘어머니, 가엾은 제 마음이 어리석게도 반역을 하고 있습니다. … 어머니께서 저를 보호해 주지 않으신다면 … ’ 그러면 성모님은 여러분이 정결을 지키고 하느님의 길을 따르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자녀 여러분, 겸손, 또 겸손해지십시오. 겸손해지는 법을 배웁시다. 사랑을 지키려면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주위를 세심하게 살피고 두려움에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영성의 대가들이 집필한 수많은 저서에 보면, 악마는 사슬에 묶여 있는 미친개에 비유됩니다. 우리가 가까이 가지만 않는다면, 미친개는 크게 짖을지언정 우리를 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영혼 안에 겸손의 덕을 키운다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죄의 기회들을 피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용기 있게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하늘에서 오는 도움에 의지하여, 참된 사랑의 길로 힘차게 전진할 수 있습니다.

육체의 욕망으로 부패한 사람은 어떤 영적 진보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 사람은 선행도 할 수 없습니다. 그는 불구자이고, 낡은 누더기처럼 버려진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혼자서 일어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진행성 마비 환자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때때로 그들은 자신의 머리조차 움직일 수 없습니다. 초자연적 질서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겸손하지 못하고 비겁하게도 욕망에 굴복한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그들은 마비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마치 미친 사람 같습니다. 우리 각자는 주님과 성모님을 부르고, 우리에게 겸손을 내려 달라고 기도하며, 경건하고 굳건한 마음으로 고해성사를 통한 치유를 적극 활용하게 해 달라고 간청해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오염이라도 여러분의 영혼 안에 스며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물이 흐르면 깨끗한 채로 유지되지만, 막히면 오물 웅덩이가 됩니다. 일단 그 물이 스며든 땅은 벌레들의 번식지가 되고 맙니다.

여러분과 제가 알고 있듯이, 정결은 가능하며 기쁨의 큰 원천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깨달은 바와 같이, 정결을 위해서는 이따금 투쟁이 요구됩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 다시 귀 기울여 봅시다.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로마 7,22-24) 과장할 것까지는 없지만 여러분도 필요하다면 사도보다 더 크게 외치십시오. 우리 주님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코린 12,9).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정결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자원들을 살펴봅시다. 우리는 이 싸움을 천사로서가 아니라 건강하고 평범한 남자와 여자로서 감당해야 합니다! 저는 천사 신심이 돈독하고, 이 하느님의 군대를 진심으로 공경합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천사들과 비교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천사들은 우리와 본성이 다르고, 그러한 비교는 혼란을 일으킬 뿐이기 때문입니다.

관능적인 분위기가 퍼져 있는 곳들이 많습니다. 여기에서는 교리에 대한 그릇된 생각들도 더해져서, 많은 사람들을 온갖 일탈에 빠지게 하거나, 적어도 온갖 종류의 타락한 관습들에 대하여 매우 부주의한 관용을 보여 주도록 호도합니다.

우리는 마땅히 할 수 있는 한 몸을 깨끗하고 순수하게 두려움 없이 지켜야 합니다. 성(性)은 하느님의 창조 능력에 참여하는 고귀하고 거룩한 것이며, 혼인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순수하고 두려움 없이 거룩한 정결을 지키며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또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먼저, 우리의 양심을 단련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충분히 노력함으로써 우리의 양심이 제대로 형성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어야 하며, 하느님의 은총인 예민한 양심과 그것과는 다른 세심한 양심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정결과 그에 수반되는 다른 덕목들, 곧 겸손함과 고상함을 기르는 데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십시오. 우리가 하느님의 눈에 들 수 있도록 크게 도와주는 덕목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도록 하십시오. 우리의 느낌과 마음을 주의 깊게 성찰하고, 죄 지을 기회에서 멀리 달아날 수 있는 용기를 기르며, 성사들 가운데서도 특히 고해성사를 자주 하고, 영성 지도를 받을 때에 최대한 솔직해야 하며, 죄를 범한 뒤에는 슬픔을 느끼면서 참회와 보속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기꺼이 성모님께 의탁하며, 성모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 깨끗하고 거룩한 삶을 얻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혹시라도 죄에 떨어진다고 하여도, 곧바로 일어나야 합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은 결코 부족함이 없으며, 우리는 그 도우심으로 되도록 빨리 회개하여 겸손하고 성실하게 보속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순간적 패배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위대한 승리로 승화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또한 요새의 성벽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싸움터를 옮기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선악의 갈림길에서 간신히 선을 선택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간접적으로 악에 참여하는 일을 단호히 피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에서 가장 사소한 잘못도 저질러서는 안 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평상시에도 열매를 맺는 사도직을 개발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거룩한 정결은 이 사도직에 반드시 필요한 받침대이며 가장 특별한 열매 중의 하나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 동안 열심히 책임 있게 일해야 하며, 그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심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큰 값을 치른 대가로 구원받은 사람들이며 성령의 성전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또 어떤 조언이 필요할까요?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사람들이 언제나 해 온 것을 그대로 하면 될 것입니다. 또 즉시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이 사용한 방법들을 따라 하면 될 것입니다. 영성체를 통하여 우리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돈독히 하고, 어린이처럼 성모님께 의지하며, 감각의 절제와 극기와 참회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그 방법일 것입니다. 대 그레고리오 성인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욕망이 허용되지 않은 것을 바라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모든 내용은 그리스도인 생활 전체의 요약일 것입니다. 사실, 정결은 사랑이며, 우리 신앙의 본질에서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며, 하느님과 끊임없이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셨으며, 비록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지라도 당신 팔로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포기할 수 없으십니다. “그런데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 49,14-15).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무한한 기쁨을 주지 않습니까?

먼저 여러분이 숨기고 싶은 것을 말하십시오. 벙어리 마귀를 몰아내십시오! 덫에 걸려 있는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작은 것부터 계속해서 바꾸어 나감으로써, 작은 눈덩이를 크게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의 영혼을 활짝 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실하게 임한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 생활 방식을 충실히 따르면서 반드시 행복해지리라고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명료성과 단순성, 이 두 가지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태도입니다. 우리 영혼을 완전히 열어야만, 하느님의 광채와 사랑이 우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항상 나쁜 의도 때문에 온전히 솔직하지 못하게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때때로 잘못된 양심 때문에 솔직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양심을 너무 기형으로 만들어서, 자신에게 단순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여깁니다. 그들은 침묵을 좋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훈련을 받아서 하느님에 관하여 제법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무언가가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그릇된 확신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틀렸습니다. 성실함은 언제나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이유를 늘어놓더라도 핑계일 뿐입니다.

이제 우리의 이야기를 마칠 시간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이 대화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정결의 덕을 기쁘고 굳건하게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청하였습니다.

정결하신 동정녀 마리아의 전구를 통하여 하느님께 간청합시다. 지극히 아름다우신 성모님께 의지하며, 제가 수년 전부터 강조했던 충고를 마음에 깊이 새기십시오. 날마다 겸손하고 정결하고 성실하고 기쁘고 관대하게 살아가려고 힘껏 노력하지만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드렸던 충고를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살면서 저지른 모든 죄들이 여러분에게 항의하며 대드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오히려 모든 것을 엄마에게 맡기는 어린이의 믿음으로 거룩하신 어머니를 부르십시오. 성모님께서 여러분의 영혼에 평화를 가져다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