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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하느님의 친구들»에 덕 → 향주덕 항이 있음.

아주 오래전, 날마다 확신이 더욱 강해지는 가운데 이런 글을 썼습니다. “예수님께 모든 희망을 두어라. 너 자신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분 안에서 너 자신을 버리기만 한다면, 그분께서 몸소 행동하실 것이다.” 세월은 흘렀고, 그러한 확신은 더욱더 강해지고 깊어졌습니다. 하느님께 그러한 희망을 둔 영혼들을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은 놀라운 사랑으로 불타올랐습니다. 그들의 뜨거운 심장은 힘차게 뛰었으며, 때로는 커다란 고통에 시달릴 때에도 낙심과 실의를 이겨 냈습니다.

오늘 미사의 독서는 매우 감동적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리라 생각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이 펼쳐져야 하는 토대를 형성하는 거룩한 향주삼덕을 묵상하도록 도와주십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여 봅시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1-5).

희망의 덕을 자라게 하여 우리의 믿음을 굳건히 합시다. 참으로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히브 11,1). 우리의 믿음을 키우고, 우리 안에 주님을 향한 사랑을 더욱 키워 주시도록 간청합시다. 우리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분명히 가치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경험으로 볼 때,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주저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포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심장은 단 하나의 사랑으로 놀라운 조화를 이루며 고동칩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사랑은 어떨까요? 그리스도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보잘것없고 가엾은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희생 제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에게 마련해 주신 상급에 관하여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요한 14,2-3). 하늘은 지상 나그네인 우리 여정의 종착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보다 먼저 가셔서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거기에는 제가 그렇게도 공경하는 성모님과 성 요셉, 그리고 모든 천사와 성인들이 계십니다.

사도 시대에조차도 그리스도인들에게서 희망을 빼앗아 버리려는 이단들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이렇게 선포하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 15,12-14). 우리의 길은 거룩한 예수님,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자신이십니다(요한 14,6 참조).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떨어져 나와 분리되지만 않는다면, 우리의 길은 마침내 영원한 행복에 이르리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이런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황홀하겠습니까!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 25,21). 희망을 가득 간직하십시오! 사려 깊은 영혼에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믿음, 희망, 사랑으로 살며, 희망은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요한 성인의 말씀을 기억합니까? “젊은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여러분이 강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머무르며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1요한 2,14). 하느님께서는 교회와 온 인류에게 영원한 젊음을 간직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을 금으로 바꿀 수 있었던 미다스 왕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인간적인 모든 것을 거룩한 것으로 바꿀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죽은 다음에 사랑 자체이신 분의 환대를 받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여러분도 지상에서 이룬 가장 고귀한 사랑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지상의 짧은 삶을 사는 동안 당신의 외아드님처럼 “좋은 일”(사도 10,38)을 하도록 안배하셨습니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께서 순교의 시간이 가까이 왔을 때에 자신의 영혼 안에서 느꼈던 부르심에 바짝 긴장하고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오너라.” 여러분의 아버지께서는 애타게 여러분을 기다리십니다.

우리 모두 함께 아버지의 집에 살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이 우리 안에 불타오를 수 있도록 우리의 희망이신 거룩하신 마리아께 간청합시다. 만일 우리가 참된 아버지의 나라로 가겠다는 진정한 열망을 마음 안에 한결같이 간직하기로 굳게 결심한다면, 우리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은총으로 우리를 그 나라로 이끄실 것이며, 우리의 배를 목적지의 아름다운 해안으로 데려가기에 충분한 바람을 보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성 바오로 사도와 더불어 거듭 이야기합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코린 13,1-3).

성체와 성혈의 성사를 약속하시는 우리 주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어떤 제자들은 투덜거렸습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 6,60)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도 어떤 사람들은 똑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묘사한 사랑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한 인류애, 인본주의 또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해와 동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향주덕의 실천을 요구합니다. 이렇게 하여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없어지고 신령한 언어도 그치고 지식도 없어집니다. …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 13,8, 13).

우리는 어릴 때 배운 간단하면서도 매력적인 소리 기도로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결코 기도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린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시작한 기도가 이제 넓고 부드럽게 흐르는 시냇물 속으로 퍼져 갑니다. 우리의 기도는, “나는 길이다.”(요한 14,6)라고 말씀하신 분과 우정을 맺는 길로 들어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참으로 사랑한다면, 우리가 거룩한 두려움으로 창에 찔린 그분 옆구리에 난 상처 속으로 피신한다면, 그때 주님의 약속이 실현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이제 우리 마음은 거룩하신 성삼위를 각각 구별하여 흠숭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어린이가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눈을 뜨듯이, 영혼이 초자연적 삶에서 어떤 발견을 하게 됩니다. 이 영혼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과 더불어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며, 생명을 주시는 위로자 성령, 인간 측의 어떠한 공로도 없이 자신을 내어 주시는 분, 온갖 선물과 초자연적 덕들을 선사하시는 성령의 업적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