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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길»에 일상 생활 → 사도직 항이 있음.

“환경이 우리에게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그대는 내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마다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자신의 주변환경을 감동시킬 수 있는 쪽으로(그대의 사도직) 정신을 형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그대가 살고 있는 사회에 그대의 ‘음조’를 울릴 수 있습니다. 

그때, 그대가 이 정신을 획득했을 때,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손이 행한 기적의 첫 열매들을 눈여겨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것처럼, 그대는 내게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주변환경에 미치는 우리의 영향이 얼마나 막대한지!”

내가 그대의 신중한 사도직을 ‘조용하고 효과적인 사명’이라고 부른 것은 사실입니다. 나는 그 말을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그대가 초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갖고 있는 신심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래서 그대도 그들처럼 매일 더욱 열성적으로 신중과 친교라는 그 효과적인 사도직을 수행하라고 최선을 다해 장려할 것입니다.

그대가 ‘신중과 친교라는 사도직’을 수행할 때, 무슨 말을 할지 모른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시편의 말씀을 그대에게 상기시키겠습니다. “주님은 사도들의 말을 효과적으로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Dominus dabit verbum evangelizantibus virtute multa”

흔들리고 있는 그대 친구의 귀에 대고 아주 적합한 때에 속삭여줄 말. 방향을 설정해주는 적절한 대화, 그의 학문을 향상시킬 전문적인 조언, 그의 열정이 되살아나도록 마음에 두고 있던 말을 넌지시 던져서 그에게 생각지도 않은 지평을 열어주는 신중함…. 이 모든 것이 ‘친교의 사도직’입니다.

‘식탁에서의 사도직!’이는 베다니아의 따뜻한 형제애를 함께 나누던 옛 선조들의 접대방식입니다. 이것을 실천할 때 우리는 라자로의 집에서처럼 식탁을 주재하시는 예수님을 엿보는 듯합니다.

대중의 축제일과 관습을 그리스도교화 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유치하지 않으면 비신사적인 구경거리를 택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를 해결함이…. 

‘오락을 통한 사도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시급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 있게 해달라고 주님께 청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