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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길»에 인간적인 덕 → 사도직에서 항이 있음.

자만 때문에 그대는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사람이 되고 있습니다. 그대는 자신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있습니다. 더욱 나쁜 것은, 그런 그대가 사도직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도 거만해서 죄를 지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자신의 길로 영혼들을 이끌 수 있는 ‘끼’와 ‘기량’이 그대에게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도구들을 찾는 도구가 되는 그 재능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십시오.

이봐요! 그를 조롱하시오!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그에게 일러주시오. 역마차가 좋은 교통수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는 게 정말 믿어지지 않군요. 그건 가발에 먼지가 수북한 *볼테르주의나 신용을 잃은 19세기 자유주의사상을 재생하려고 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죠.

*볼테르: 프랑스의 작가, 대표적 계몽사상가

한번은 어떤 사람이 자기 머리를 가리키면서 “나는 정의롭다는 인간들 때문에 이 머리 위까지 넌더리가 났어!” 하고 외쳤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대를 대할 때는 그런 말이 나오지 않게 하십시오.

사도직에 있어서 불순명이나 이중성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단순함은 경솔함도 무분별함도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영혼들이 그대에게 다가가는 것을 막는 그 ‘자기만족의 기분을 버리십시오.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순수하게 말하십시오. 그래야만 그대의 사도직이 성장하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흔들리고 있는 그대 친구의 귀에 대고 아주 적합한 때에 속삭여줄 말. 방향을 설정해주는 적절한 대화, 그의 학문을 향상시킬 전문적인 조언, 그의 열정이 되살아나도록 마음에 두고 있던 말을 넌지시 던져서 그에게 생각지도 않은 지평을 열어주는 신중함…. 이 모든 것이 ‘친교의 사도직’입니다.

‘식탁에서의 사도직!’이는 베다니아의 따뜻한 형제애를 함께 나누던 옛 선조들의 접대방식입니다. 이것을 실천할 때 우리는 라자로의 집에서처럼 식탁을 주재하시는 예수님을 엿보는 듯합니다.

대중의 축제일과 관습을 그리스도교화 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유치하지 않으면 비신사적인 구경거리를 택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를 해결함이…. 

‘오락을 통한 사도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시급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 있게 해달라고 주님께 청하십시오.

그대는 ‘편지를 통한 사도직’을 매우 칭찬했습니다. 그대는 이렇게 말했지요. “저는 어떤 말로 편지를 시작해야 제 편지를 받게 될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릅니다. 편지에서 내가 바라는 것은 그에게 도움을 주는 것 뿐이라고 수호천사에게 말하고 나서 쓰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제가 허튼 소리를 써보냈다 하더라도, 편지받는 영혼이 제일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해 기도한 그 시간은 누구도 나와 그사람으로부터 뺏앗지 못합니다”

가치없는 것을 경멸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대에게 ‘거저 주지 않는 사도직’을 실천하라고 권고했던 것입니다. 

만일 그대의 직업이 사도직 도구라면 그대는 그일을 할 때 적당한 금액을 정당하게 요구하는 것을 결코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