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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그리스도께서 지나가신다»에 사랑(애덕) → 애덕의 표현 항이 있음.

아무리 작은 일처럼 보이더라도, 사랑으로 한 일은 소중합니다. 우리가 가련한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 (잠언 8,31).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이 가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이상하고 하찮은 일로 여겨지더라도, 모든 것이 소중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는 아무것도 헛되지 않으며, 쓸모없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 나라를 더불어 나누도록 부르심 받았습니다. 우리들 각자가 가정에서, 일터에서, 시민적 의무에서, 그리고 권리의 행사에서 자신의 성소를 수행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요셉 성인의 삶은 훌륭한 본보기입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요셉의 삶은 단순하고 일상적이며 평범했습니다. 매일 같은 일이 반복되고 단조롭기 짝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저는 종종 요셉 성인의 삶에 관해 묵상하며 이렇게 단조로운 인생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요셉 성인을 특별히 공경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요한 23세 교황께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첫 회기를 마치면서 미사 전문(典文)에 요셉 성인의 이름이 포함될 것이라고 발표하셨습니다. 그때 어느 고위 성직자가 제게 전화를 걸어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축하합니다. 교황님의 발표를 듣고 곧바로 호세마리아 신부님을 떠올렸습니다. 신부님이 얼마나 행복해할지 생각했지요.” 저는 실제로 행복했습니다. 공의회는 성령 안에서 하나로 모인 전체 교회를 대표합니다. 그런 공의회에서 요셉 성인이 사셨던 삶의 위대한 초자연적 가치가 선포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이뤄내기 위해 부단히 노동하며 살아오신 평범한 일상의 가치가 선포된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제가 행복했던 이유입니다.

일이 존엄한 근거는 바로 사랑입니다. 이 사실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의 위대한 특권은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고, 또한 덧없이 흘러지나가는 것들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피조물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다른 피조물들을 향해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나’와 ‘너’라고 부르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우리를 당신 가족의 일원으로 만드시고, 서로 마주 보고 친교를 나누며 하느님께 이야기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인간은 물질적 생산에 스스로를 가둬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일은 사랑의 산물(産物)입니다. 일은 사랑의 현시(顯示)이며, 사랑을 지향합니다. 우리는 자연의 경이로움에서뿐만 아니라, 일을 하며 노력한 우리의 경험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봅니다. 그러기에 일은 ‘기도’와 ‘감사’가 돼야만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 땅 위에 두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고, 또한 하느님께 우리가 사랑받고 있으며, 그분이 하신 약속을 우리가 이어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연히 다음과 같은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들어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1코린 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