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 목록

2«그리스도께서 지나가신다»에 이해 → 애덕 항이 있음.

평화와 기쁨의 씨앗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이미 여러분께 사회적 또는 정치적 위기라든지 문화적 쇠퇴나 혼란에 관해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악(惡)의 정확한 의미는 ‘하느님께 대항하는 공격’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사도직은 어떤 정치적 프로그램이나 문화적 대안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교의 사도직은 선함의 확산을 의미합니다. 사랑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평화와 기쁨의 씨를 뿌리는 일을 뜻합니다. 이러한 사도직 활동은 의심할 여지없이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영적 이익을 가져올 것입니다. 더 많은 정의와 더 많은 이해,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더 큰 상호 존중을 이루어낼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는 데에 우리가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겐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끌어갈 의무가 있으며, 각자 성인이 돼야 할 임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겐, 하느님께 결코 등을 돌리지 않으며, 그리스도인이 진리를 전하는 본보기이자 원천이 되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의 사도직은 이해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제가 이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사랑의 특징은 베푸는 것보다 이해하는 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해받지 못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제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배웠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항상 제 자신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이해하지 않으려고 작정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모든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위한 또 하나의 이유를, 매우 실질적인 이유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더 크고 보편적이며 가톨릭적인 마음을 가지라고 우리를 재촉하는 그런 이유는 아닙니다. 우리가 반드시 보여줘야 하는 이해는 하느님의 착한 자녀로서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땅에서 추구되는 모든 진실한 일들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함께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가라지가 아닌 형제애와 용서, 그리고 사랑과 평화의 선한 씨앗을 뿌리기를 원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니 여러분 스스로 누군가의 적(敵-원수)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자신의 삶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열망을 기꺼이 희생해야 합니다. 사람들을 편 갈라 나누거나, 서로 구분하거나, 무슨 상품이나 곤충표본처럼 사람들에게 꼬리표를 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분리할 여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그렇게 행동한다면 그의 삶은 형편없이 이기적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야 합니다. (참조 1코린 9,22)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의 행동을, 관대함이라는 선한 씨앗과 이해와 평화를 위한 열망으로 흠뻑 적시는 방법을 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정당한 독립성을 장려하게 될 것입니다. 세속의 문제들에 있어서 각자에게 부여된 과제들에 대해 스스로의 책임을 떠맡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저마다 다른 사람의 자유를 우선적으로 보호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자유 또한 지키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다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스스로의 약점을 갖고 있고 실수를 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또한 하느님의 은총과 스스로의 인간적 고결함으로 다른 사람들이 악을 이기도록, 가라지를 제거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서,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존엄함에 따라 살아가도록 서로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섬김으로써 다스리시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 영혼을 다스리시게 한다면, 우리는 결코 권위주의적일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을 섬길 것입니다. 저는 “섬기다”라는 말을 정말 좋아합니다. 제 임금을 섬기고 그분을 통해 당신의 성혈로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저는 참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섬기는 방법’을 알기 바랍니다. 오직 섬김으로만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할 수 있으며 그분을 널리 알리고 사랑받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분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바로 우리의 모범을 통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을 우리가 자발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행동을 통해 그분의 증거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네 모든 삶의 주님이시며 우리들 존재의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단 한 번 이 섬김의 증거자가 되면 우리의 언어로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활동하신 방법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처음부터 다 다루었습니다.” (사도 1,1) 예수님께서는 먼저 당신 행동으로 가르치시고, 그런 다음에 거룩한 강론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다른 사람을 섬기려면 진정으로 ‘인간적’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삶이 인간적이지 못하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삶 위에 아무것도 세우시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질서와 이기심, 또는 자만(自慢) 위에는 아무것도 정상적으로 세우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이들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불의(不義)를 정의(正義)라고 불러서는 안 되고,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을 그렇지 않다고 말해서는 안 되며, 악을 선이라고 말해도 안 됩니다. 악과 마주했을 때 또 다른 악으로 대항해서도 안 되며, 오히려 굳건한 교리와 선한 행동으로 맞서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충만한 선 앞에 악이 굴복당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영혼과 우리 주위 사람들의 영혼을 다스리시는 방법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마음에 하느님의 사랑을 담으려 하지도 않으면서 세상에 평화를 세우려고 애씁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평화를 이루겠습니까? 그리스도의 평화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의 평화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의 나라는 거룩함을 향한 열망과 은총을 받아들일 겸손한 준비를 필요로 합니다. 동시에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과 거룩한 사랑의 분출을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