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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그리스도께서 지나가신다»에 인간적인 덕 → 책임감 항이 있음.

유용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 봉사하며 섬기십시오 

이렇게 우리의 직업과 일을 거룩하게 하면서 살고 싶다면, 우리는 정말로 일을 잘해야 합니다. 인간적으로도 초자연적으로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화제를 돌려서, 이와는 상당히 대조적인 태도에 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외경(外經)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목수였던 예수님의 아버지는 쟁기와 멍에를 만들었다. 어떤 유력한 인사가 그에게 침대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침대의 다리 하나가 다른 다리들보다 짧게 만들어지고 말았다. 요셉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자 어린 예수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두 개의 다리를 땅바닥에 놓고서 한 쪽 끝을 맞춰 똑같은 길이로 만드세요.’ 요셉은 어린 예수가 말해준 대로 했다. 어린 예수가 한쪽 끝으로 가서 더 짧은 나무 기둥을 잡아 다른 기둥과 길이가 같아질 때까지 잡아당겼다.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이러한 기적에 몹시 놀랐으며 어린 예수를 안고 입을 맞추었다. 요셉은 말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이런 아이를 주셨으니, 나는 정말 행운아로구나!’”

물론, 요셉 성인이 그런 식으로 감사드리지 않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런 방식으로 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는 쉬운 해결책이나 작은 기적 같은 것을 바라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인내하고 노력하며, 필요할 때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며, 수 세기 전에 기적을 일으키셨고, 그 후에도 계속해서 기적을 행하고 계시며, 지금도 여전히 기적을 일으키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손이 짧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적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 권능의 징표입니다. 기적은 무능함을 치료하는 방편도 아니고, 무언가를 노력하지 않고 쉽게 해결하려는 방법도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요구하시는 ‘기적’은 이렇습니다. 매일 여러분이 맡은 일을 성화(聖化)함으로써 여러분에게 주신 그리스도교의 거룩한 소명을 최선을 다해 계속 이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요청하시는 기적입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는 매일매일의 평범한 산문(散文)을 영웅적 서사시(敍事詩)로 바꾸는 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그런 기적은 여러분이 일상적인 일에 쏟는 사랑으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곳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이 사도로서의 열정과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훌륭한 능력을 가진 책임감 있는 인간이 되길 기대하고 계십니다.

더불어, 저는 여러분이 일하는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면, 봉사하십시오.’ 제대로 일을 하려면 우선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전문적인 직업 기술을 습득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과제들을 올바로 수행하려고 분투하지 않는다면, 저는 그런 사람들의 성실성을 믿지 않습니다. 단지 선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일을 어떻게 하는지 알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만약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이 진심이라면, 그 일을 하기에 꼭 맞는 방법을 행하려는 우리의 노력으로부터 그러한 열망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일을 잘 해내고 인간적인 완벽함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활용하려는 노력 말입니다.

하지만 인간적 봉사와 그에 걸맞는 기술, 그리고 직업에 관한 지식은 하나의 일관된 특징을 가져야 합니다. 그 바탕을 요셉 성인의 ‘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됩니다. 그것은 바로 봉사의 영성이며,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기여하려는 열망입니다. 비록 요셉의 활동적인 삶이 그를 강인하고 힘찬 성격의 소유자로 만들어 주었을지라도, 요셉 성인은 일의 중심에 결코 자기 자신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을 할 때 항상 자신이 하느님의 뜻을 이행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민족을,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를, 그리고 나자렛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이 나자렛의 유일한 목수는 아니었겠지만, 그는 나자렛에서 몇 안 되는 장인(匠人)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골 마을이 늘 그렇듯이, 요셉은 목수일 말고 다른 일도 해달라는 요청을 분명히 받았을 겁니다.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방아를 고쳐주고, 겨울이 다가오면 지붕의 기와를 수리해주었을 겁니다. 여러 일들을 잘 처리하려면, 어떻게 사람들을 도와야 할지 요셉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을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과정에서 그의 숙련된 노동은 마을의 다른 가족들의 삶을 밝게 비춰주었을 것입니다. 또한 한 줄기 미소와 친절한 말 한 마디로, 그리고 부담스럽지 않게 슬쩍 지나가는 얘기로 이웃 사람들의 힘을 북돋워 주었을 것이고요. 덕분에 자신감과 행복을 잃을 뻔했던 이들이 활력을 되찾았을 겁니다.

개인의 자유 

자신의 일을 할 때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그들이 하는 일들이 가진 의무를 회피하거나 폄하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인간의 모든 활동을 축복한다”는 표현이 그들의 고유한 본질에 대한 모욕이나 무시를 뜻한다면, 저는 그런 표현을 결코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인간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알리는 플래카드나 종교를 드러내는 명찰을 달고 다니는 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게 반대하는 의견들을 존중합니다만, 그런 식의 표지를 달고 다니는 것이 우리 신앙의 거룩한 이름을 헛되이 사용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가톨릭”이란 이름 또한 때로는 인간의 기준에 따라 점잖지 못한 활동과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습니다.

죄를 제외하면 이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들은 선합니다. 우리 주 하느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리스도인은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긍정적인 방법으로 분투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시민들과 어깨를 맞대고 세속에서 꾸려가는 모든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인간의 존엄성에 기반한 모든 가치들을 수호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특별히 소중하게 여겨야만 할 한 가지 가치가 있습니다. 바로 ‘개인의 자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의 개인적 자유를 보호해야 합니다. 물론 그러한 이웃의 자유 또한 지켜야 할 그들 나름의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럴 때에만 인간적인 동시에 그리스도교적으로 진실되게 자기 자신의 자유를 지킬 수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엄청난 초자연적 능력, 즉 거룩한 은총, 그리고 다른 놀라운 인간적 능력, 바로 ‘개인의 자유’를 거저 주셨습니다. 이렇게 주어진 개인의 자유가 방종으로 타락하지 않도록 우리는 더욱더 성실해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이 하느님의 율법에 따르도록 진심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자유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서 유일한 종은 하느님 사랑에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묶어 맨 이들뿐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사랑의 노예들인 것입니다. 자유가 없다면 우리는 은총에 응답할 수 없습니다. 자유가 없다면 우리는 주님께 우리들 자신을 거리낌 없이 내어드릴 수 없습니다. 가장 초자연적인 이유를 들자면 우리가 그렇게 원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지금 제 말씀을 듣는 분들 중 몇몇은 저와 오래 알고 지냈습니다. 그러니 제가 평생 ‘책임을 수반한 개인의 자유’를 강론해왔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실 수 있을 겁니다. 등불을 들고 정직한 사람을 찾으려 했던 디오게네스처럼 저는 온 세상을 돌며 자유를 찾았고, 지금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 더더욱 자유를 사랑하게 됩니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중에 저는 자유를 가장 사랑합니다. 자유는 우리가 그 가치를 충분히 가늠할 수 없는 보물입니다.

제가 개인의 자유에 관해 말할 때, 사제로서 제 능력 밖에 있는 정당한 문제들에 관해 참견할 핑계로 사용하려는 게 절대 아닙니다. 세속적이고 시민적 영역에 속하는 현실 문제들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제게 맞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주제들은 우리 주님께서 인간이 자유롭고 차분하게 논의해야 할 문제로 남겨 두셨습니다. 사제의 입은 모든 인간적이고 당파적인 논란을 피해가야 한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제는 오직 하느님과 그분께서 주신 구원 교리로 영혼을 인도하기 위해서만 입을 열어야 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성사와 하느님께 더욱 가깝게 다가가는 내적 생활로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서만 말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예외 없이 형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그리스도의 나라를 정치 공학적인 면으로만 바라본다면, 그는 신앙의 초자연적인 목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과는 전혀 무관한 양심의 무거운 짐을 질 위험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멍에는 편하고 가벼운 멍에이고, 그분이 주시는 짐은 가볍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사제로서 제 역할을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을 사랑합시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다른 사람들의 정당한 자유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그들과 조화롭게 어울려 살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