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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사랑의 담금질»에 고통(슬픔) → 그리스도인의 의식 항이 있음.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그대의 영혼에 속죄하고자 하는 갈망을 불어넣으십니다. 그대가 보잘것없는 개인적 속죄 행위를 예수님의 무한한 공로에 합친다면, 그대의 그 갈망이 충족될 것입니다.

그대의 지향을 바로잡으십시오. 그리고 그분 안에서 그분과 함께 그분을 통하여 고통을 사랑하십시오.

관대하게 ‘이루어지소서!’ 하고 응답하면서 그대의 고통―그것이 외적인 십자가이든 내면의 십자가이든 간에―을 하느님의 뜻에 합치시키십시오. 그러면 그대에게 기쁨과 평화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인생이 용광로, 고통의 불로 타오르는 용광로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곳, 그 용광로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스승이 밟은 그곳을 두려움 없이 밟는 이들은 비록 그 여정이 힘들더라도 기쁨을 발견한다고 말입니다.

제가 영적으로 돌보던 한 여자 교우는 병중에서도 그 얼마나 하느님의 뜻을 사랑했던지요! 길고 고통스러운 합병증으로 몸에 성한 곳이 없었지만, 그녀는 이것이 예수님의 축복이자 그분의 특별한 사랑의 표시로 보았으니까요. 비록 겸손하게 자신은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말하곤 했습니다만, 그녀의 온몸을 엄습한 그 끔찍한 고통은 벌이 아니라 자비였습니다.

우리는 죽음에 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관해서도요. 물론 예수님과 성모님에 관해서도 이야기했지요. 천국에서는 여기 지상에서보다 얼마나 더 많은 일을 하게 될까를 두고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녀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언제라도 죽을 준비가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기쁨에 차서 “오늘이 그날이라면!” 하고 외쳤습니다. 죽으면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기쁨으로 죽음을 관조했습니다.

고통과 박해에 직면했을 때 초자연적 감각을 지닌 한 영혼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연옥에서 얻어맞기보다는 차라리 여기서 얻어맞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