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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사랑의 담금질»에 죽음 → 죽음의 두려움 없이 항이 있음.

하느님의 자녀는 삶과 죽음, 그 어느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영적 생명은 하느님의 자녀라는 의식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아버지이시다. 그분은 모든 선한 것을 지으신 분이시다. 그분은 선 자체이시다.’

하지만 그대와 나, 우리는 진정으로 하느님의 자녀로서 처신합니까?

제가 영적으로 돌보던 한 여자 교우는 병중에서도 그 얼마나 하느님의 뜻을 사랑했던지요! 길고 고통스러운 합병증으로 몸에 성한 곳이 없었지만, 그녀는 이것이 예수님의 축복이자 그분의 특별한 사랑의 표시로 보았으니까요. 비록 겸손하게 자신은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말하곤 했습니다만, 그녀의 온몸을 엄습한 그 끔찍한 고통은 벌이 아니라 자비였습니다.

우리는 죽음에 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관해서도요. 물론 예수님과 성모님에 관해서도 이야기했지요. 천국에서는 여기 지상에서보다 얼마나 더 많은 일을 하게 될까를 두고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녀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언제라도 죽을 준비가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기쁨에 차서 “오늘이 그날이라면!” 하고 외쳤습니다. 죽으면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기쁨으로 죽음을 관조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대의 벗이니까요!

죽음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하십시오. 종종 그대의 무덤을 들여다보십시오. 그대가 죽은 지 여드레가 지난 그 무덤에서 그대의 썩어가는 주검을 쳐다보고 만져보고 그 냄새를 맡아보십시오.

특히 육신의 충동으로 괴로울 때 이를 명심하십시오.

그는 자신의 영혼을 내게 드러내 보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즈음에는 죽음을 안식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저의 죄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그리고 ‘당신은 죽을 때가 됐습니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저는 ‘살 때가 된 것입니다.’ 하고 기쁘게 응답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죽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믿음을 지닌 사람이 어떻게 죽음을 두려워할 수 있습니까? 하지만 주님께서 그대가 이곳 지상에서 계속 살기를 원하시는데 죽기를 원하는 것은 비겁합니다. 그대는 살아야 합니다. 살아서 고통을 겪으며 사랑을 위해 일하십시오. 그것이 그대의 몫입니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죽음의 순간을 떠올리십시오. 그러면 날마다 일어나는 일들을 죽음의 순간에 비추어 숙고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한 평화를 그대는 잘 체험하게 되리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