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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사랑의 담금질»에 하느님의 뜻 →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투쟁 항이 있음.

우리 주님께서는 그대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 한가운데서 가야 할 길을 분명히 보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대는 이름 없는 사람이 되어 가장 먼 구석에서 아무도 모르게-오직 하느님과 그대만이 알게-일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종종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비록 끝에 가서는 그것이 편함을 찾는 길이라고 인정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선교사로 일한다는 생각과는 별개로, 단지 그렇게 남모르는 희생적 삶을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그대 마음에 떠오른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거룩하고 자연스러운 책무들을 수행하는 것은 그대의 소명이 아니라고 여기면서 그런 책무들에서 벗어나 수도 단체에 “숨으려” 한다면 그대는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대에게는 평화가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그대의 뜻을 행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대의 ‘성소’는 의무 불이행이라는 다른 이름이 되고 말 것입니다. 신성한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전투를 마주하기를 순전히 인간적으로 꺼리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대는 고해성사를 보고 나서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찬미 받으소서.” 그리고 그대는 방금 다시 태어난 것 같다고 생각했지요.

그다음에 그대는 계속해서 평온하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무엇을 하기 바라십니까?”

그리고 그대 자신이 이렇게 응답했습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지극히 거룩하신 당신의 뜻을 전적으로 따르겠습니다. 당신을 무조건으로 섬기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은 내 형제들인 사람들이 천국에서만이 아니라 또한 가능하다면 이 지상에서도 행복해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이 참으로 나의 천상 아버지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을 포용한다면 말입니다.

그대는 여전히 망설이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지요. “주님께서 언제 제게 더 많이 요청하고 계시는지를 저는 잘 압니다.”

나는 그때 그대가 다만 그분과 하나 되기만을 얼마나 원했는지를 그대에게 일깨워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대는 계속 움츠러드는가요?

자신을 내어놓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많은 영혼이 드러나지 않은 내적 삶에서 자신을 내어놓습니다. 주님만이 빛나시도록 하려고 말입니다.

나는 그대와 내가 성가정 축일에 하느님께 아주 가까이 가기를 원했던 그 사람처럼 행동하기를 원합니다. 당시에 성가정 축일은 주님 공현 팔일 축제 중에 지냈습니다.

“제게는 작은 십자가가 많이 있었습니다. 어제는 그 가운데 하나가 저를 너무 아프게 해서 저는 울었습니다. 오늘 그 십자가로 저는 아버지 성 요셉과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서 당신들의 이 자식이 성탄 선물 없이 지내도록 하지 않으시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선물은 제가 예수님께 배은망덕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 빛이었습니다. 저를 당신의 도구로 쓰시길 원하시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을 저의 돼먹지 못한 처신으로 거스르려 했던 엄청난 잘못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마음을 다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도록 초대합니다. 우리 어깨로 전 인류의 무게를 느끼도록, 또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른 계획, 명확하면서도 사랑에 찬 그 계획을 우리 각자가 처한 상황과 하는 일에 맞춰서 이행하도록 초대합니다.

여기에 있으나 선교지(중국)에 있으나 마찬가지라고 그대는 말합니다.

어디에 있든지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이행하도록 노력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