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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고랑»에는 교만를 주제로 하는 16 항이 있음.

마치 그대가 중심이나 되는 것같이 그대가 모든 것을 당신 자신을 싸고 돌게 만들기 때문에 그대는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그대는 배가 아프고,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피곤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네들이 이러쿵저러쿵 말했고···

그대는 주님 하느님에 관해서, 그리고 주님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 관해 생각해 보려고 한 적이 있습니까?

그대가 찾고있는 것은, 개심(改心)이 아니라, 자신의 결점을 소중히 간직해 두는 상자입니다. 그리하여 비록 씁쓸한 뒷맛이 남기는 하나 그 슬픈 짐을 질질 끌면서도 안락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당신의 마음은 아팠습니다.

고집 센 것은 어리석음뿐입니다. 고집이 세다면 지독히 어리석습니다.

자기애를 뿌리째 뽑아 버리고 그 자리에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심으십시오. 그것이 능률과 행복의 비결입니다.

비록 그대가 주님을 따라간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이런저런 방법으로 일들을 하는 것은 언제나 ‘그대의’ 계획들에 따라, ‘그대의’ 힘에만 의존하여 해나가는 당신임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요한

15:5)”.

사람들은 그대가 그대의 “권리”라고 부르는 것을 무시했는데, 그대의 권리를 저는 그대의 “거만해질 권리”라고 그대에게 번역해 드립니다. 그대는 어찌 그리도 우스꽝스러운 형상을 만들어냈나요. 그대의 공격자가 강력하였기 때문에 그대는 자신을 방어할 수 없었고 그대는 백 번이나 따귀를 맞을 정도의 모욕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당신 자신을 낮추는 것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대의 양심이 그대를 거만하고 비겁하다고 부르면서 그대를 나무랍니다. 하느님께 감사드리십시오. 왜냐하면 그대는 그대의 ‘겸손해져야할 의무’를 흘끗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항상 나, 나, 나입니다. 그대가 “주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하느님의 힘을 가지고 행동하도록, 주님, 주님, 주님일 때까지는 결코 그대의 능률은 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을 중심에 두고 겉돌고 있습니다. 그러고도 예수님을 따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성급하게 또 지나칠 정도로 직업상 높은 자리에 오르는데 마음을 빼앗긴다면 '사람들을 섬긴다'는 구실과는 달리 자기애를 감추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호기를, 어떤 유리한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말함으로써 우리 행동을 정당화하기를 추구할 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께 시선을 돌리십시오; 주님은 “길”이십니다. 주님께서 감춰져 계셨던 여러 해 동안에, 주님의 공생활을 앞당기는 데 “대단히 유리한” 기회들이 역시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주님께서 열두 살 되셨을 때 율법 박사들이 주님의 질문들과 주님께서 하신 대답에 놀랐을 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의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셨고, 그리고 주님께서는 기다리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복종하셨습니다.

온 세상을 하느님께 인도하려는 그대의 그 거룩한 야망을 잃지 마십시오. 그러나 유리한 시기나 상황을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르면(그것들은 탈주하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일지도 모르니까) 다음과 같이 생각해 주었으면 합니다. 즉, 주님이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는 한, 당신이 해야할 일은 순종하는 것, 별로 볼품없는 그 눈에 띄지 않는 일에 종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 자신의 시간과 길을 갖고 계십니다.

돈,가문, 계급, 지위, 지성 등에 의해 얻은 특권을 악용해 어려운 사람들에게 창피를 주는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고 교만하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악마가 조종하는 실에 놀아나고 허영심이 많고 몽롱한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사람을 교만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런 사람은 아무리 위엄이 넘쳐도 조만간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오만함 때문에 수모를 당하게 됩니다.

자만심 때문인지, 단순한 허영심 때문인지, ‘암시장'에서 작위적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려는 사람이 다수 있습니다.

그대의 실패를 보고도 실망하지 말고 그것에 반발하십시오.

결실이 없는 것은 - 특히 통회하고 있다면 - 실패한 결과라기보다는 교만의 결과입니다.

쓰러졌다면 이전보다 더 큰 희망을 가지고 일어나십시오. 잘못을 해도 행실을 고치기만 하면 자기를 알고 겸손해지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것을 모르는 것은 오직 자기애에 사로잡혀 있을 때 뿐입니다.

“우리들은 쓸모없다”라는 것은, 비관적이고 거짓된 주장입니다. 만약에 첫째가고 기본되는 요건인 ‘하느님의 도움’을 가지고 원한다면, 여러 가지 사업들을 위한 좋은 도구로써 쓸모있게 될 수 있습니다.

한 거만한 사람을 보고 하느님이 하신 엄하지만 정확한 말씀을 들었을 때 저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는 악마와 똑같은 가죽 —교만을 덮어쓰고 있다”

그리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내 마음에 “나는 온유하고 마음이 겸손하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덕을 몸에 지니고 싶다는 성실한 소망이 마음에 솟아났습니다. 겸손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시선을 주님의 모친이시며 우리들의 모친이신 분께로 끌어당겼습니다: 겸손이란 자신이 무(無)임을 자각하고 그것을 느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