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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밭고랑»에 형제애 → 보편적 형제애 항이 있음.

이기주의에 패배해서 사람들의 건전하고 즐거운 생활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다면, 또한 이기적으로 이웃의 물적 혹은 정신적 비참을 보면서 아무 느낌도 들지 않는다면 당신이 어떻게 하든 나는 엄한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약 그대가 그대의 동료들과 형제인 사람들에게 거룩한 형제애를 느끼지 않고, 그리스도인 자녀의 대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산다면, 당신은 불쌍한 버려진 아이라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사도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여기에는 그리스인과 유다인, 할례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 타국인, 야만인, 노예, 자유인 따위의 구별이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전부로서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하십니다.”

이 말들은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유효합니다. 주님 앞에서는 민족, 종족, 계급, 나라··· 등의 차이는 없습니다. 우리들 하나하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인 하느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모두 형제들이고, 우리는 서로 간에 우애있게 처신해야 합니다.

만약에 언제나 그리고 모든 일에서 성실하고 개방된 형제애를 가지고 사람들을, 어떤 사람이라도 대면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대가 하느님을 대면하면서 산다는 것을 저에게 이해시키려고 시도하지 마십시오.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공통의 사명과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 사람들은 결속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행복이라는 ‘유일한 목적’이 별로 값어치가 없어보입니다.

그대가 의외로 발견한 우애와 우정의 정신이 그대에게 열성과 함께 채워졌습니다. 그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갈망하면서 꿈꾸어 왔었지만 경험해 본적이 없었던 그 무엇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우리들 모든 개개인을 위해 남김없이 우리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내어 준 그 사랑스러운 우리들의 형제인. 그리스도의 형제들임을 사람들이 잊었기 때문입니다.

뜻밖에 발견한 우애와 우정의 정신에 당신은 푹 빠졌습니다. 당연한 얘기입니다, 꿈에 그리면서도 실제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 당신이 그것을 볼 수 없었던 것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형제라는 것, 즉 타인을 위해 모든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목숨을 바칠 수 있었던 우리의 다정한 형제, 그리스도의 형제임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조직한 모임에 참석한 후에, 그 노동자가 열중해서 말하고 있던 것을 메모했습니다. 이곳에서 들은 것 같은 고결함이나 정직, 상냥함이나 관대함 등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까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감탄한 그 사람은 마지막으로 말했습니다. “좌익과 우익의 물질주의에 비교하면, 이것은 참된 혁명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확립해 주신 형제애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없을 테니 열심히 노력해서 그 가르침이 힘을 잃지 않도록 해야합니다.